살아온 시간만큼, 조국은 우리에게 형태 없는 거울이 됩니다.
그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가.”
조국을 닮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세대·경험·감정의 흐름 속에서 사색적으로 풀어낸 에세이입니다.
![]() [코리안투데이] 머릿돌15. 조국을 닮아가는 마음 © 지승주 기자 |
어느 날 문득, 조국을 바라보는 마음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는 나라라는 말이 너무 크고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나라는 늘 존재하는 배경처럼 여겨졌고,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거기 있는 무엇’쯤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삶을 조금 더 깊게 경험하면서부터 조국이라는 단어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무게를 지닌 채 제 마음속에 내려와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침마다 하늘 위로 부드럽게 나부끼는 태극기를 볼 때,
고향의 산맥이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볼 때,
지하철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도 화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
저도 모르게 ‘이곳이 나의 조국이구나’ 하고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이 일어났습니다.
조국은 단지 국호나 깃발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밟고 서는 땅이며,
우리의 말투와 마음씨를 빚어낸 보이지 않는 손이며,
우리가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향기 같은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늦은 나이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나라 안팎에서는 크고 작은 논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지만 그 모든 변화를 지나고 나서도 남는 것은 하나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품고 살아가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모두 고개를 들고 조국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조국을 닮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 애국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을 성찰하는 과정이자, 책임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겠다는 조용한 약속입니다. 나라가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까지도 품고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조국을 닮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어릴 때 보았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난했지만 서로 나누며 살았던 마음,
내가 가진 것보다 이웃의 어려움을 먼저 걱정하던 눈빛,
한번 한 약속을 지키려 땀 흘리던 자세.
그 마음이 바로 조국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살아오며 깨닫습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이고,
욕심보다 귀한 것은 나눔이며,
소유보다 오래 남는 것은 선한 흔적이라는 사실을.
이 모든 가치는 조국이 우리에게 오래도록 가르쳐 준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조국을 닮아간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내 가족을 돌보듯 이웃을 바라보고, 내 일처럼 공동체의 아픔을 느끼는 감수성. 그런 마음이 쌓여야 비로소 나라가 단단해집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아주 뒤늦게 이해했지만, 이해한 만큼 더욱 감사한 마음이 커집니다.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밤잠을 포기하며 산업화를 일구었고,
누군가는 눈물로 민주화를 지켜냈습니다.
그 모든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위에 서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국은 거창한 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조국은 다만 “너다운 모습으로, 선하게 살아달라”고 조용히 말해 줍니다.
그 속삭임을 들을 줄 아는 마음, 그 마음이 깊어지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조국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태극기는 바람에 흔들리고,
산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고,
강물은 쉼 없이 흐릅니다.
이 풍경 속에서 저는 다시 다짐합니다.
“내가 받은 이 나라의 은혜를, 나도 누군가에게 되돌려주자.”
그 마음이야말로 조국을 닮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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