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품은 도시: 산업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의 서남부, 안양천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 구로구는 오랜 시간 한국 산업 발전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왔다. 1960년대만 해도 논밭과 야산이 펼쳐져 있던 이곳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한국 최초의 수출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다.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 중심지였던 구로공단은 197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수출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수출의 다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변화를 품은 도시: 산업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코리안투데이] 사진 구로구 로고 © 박수진 기자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섰을 때,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많은 기업이 지방과 해외로 이전하면서 구로공단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1997년 정부의 ‘구로산업단지 첨단화 계획’ 발표와 함께 이 지역은 다시 한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과거의 제조업 중심지를 정보기술(IT)과 연구개발(R&D) 중심의 첨단산업단지로 변화시키는 대대적인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후, 구로공단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연기가 뿜어져 나오던 공장들은 사라지고, 수천 개의 IT기업이 입주한 초고층 빌딩들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지하철 역의 이름도 구로공단역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변경되었고, 도로명도 공단로에서 디지털단지로로 바뀌면서 과거의 산업 도시 이미지는 점차 사라졌다.

현재 구로디지털단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IT·벤처기업의 허브로 자리 잡았으며, 매일 아침 8시가 되면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과 최신 IT기기를 손에 든 ‘디지털 세대’가 거리를 가득 채우는 곳으로 변모했다.

 

  [코리안투데이] 사진 구로구 G 벨리 © 박수진 기자

 

2. 구로구, 소외된 이들의 삶터에서 다문화 사회로

구로구의 변화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1960~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근로자들은 ‘공순이’와 ‘공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이 거주했던 가리봉동은 공단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지역으로, 좁은 골목과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대표적인 저소득층 주거지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공장들이 줄어들고, 디지털단지가 조성되면서 구로구의 풍경도 달라졌다. 이제 가리봉동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다문화 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서 온 조선족 동포들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가리봉동은 자연스럽게 중국 동포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가리봉동에서는 한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중국 음식점과 조선족 동포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주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온 조선족들이 모여들어 시장은 활기를 띠고, 거리에는 중국어와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린다. 가리봉동은 단순히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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