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이 아닌 삶의 자리에서”…양천구, ‘통합돌봄’ 전국 시행 앞두고 선제적 체계 구축

고령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돌봄의 방식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 수 없다. 병원과 시설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살던 집과 익숙한 동네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통합돌봄’이 국가 정책으로 본격 시행을 앞둔 가운데, 서울 양천구가 한발 앞선 준비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행정 조직과 현장 전달체계, 민관 협력 구조까지 촘촘하게 재편하며 ‘양천형 통합돌봄 모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리안투데이] 양천구 통합돌봄 설명회에서 인사말 중인 이기재 양천구청장(사진=양천구청)
© 변아롱 기자

 

양천구는 지난 12일 관련 부서 공무원과 복지·의료·요양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양천구 통합돌봄 설명회’를 열고, 내년 통합돌봄서비스 전국 시행에 대비한 추진 방향과 실행 전략을 공유했다. 통합돌봄은 고령, 장애,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주민이 병원이나 시설에 머무르지 않고, 기존에 살던 지역에서 의료·요양·보건·주거·생활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돌봄 정책이다.

 

이 제도는 급속한 고령화와 재가돌봄 수요 증가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등장했다. 그동안 돌봄은 의료는 의료대로, 요양은 요양대로, 복지는 복지대로 나뉘어 제공되면서 대상자와 가족이 직접 여러 기관을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이 컸다. 통합돌봄은 이러한 분절 구조를 해소하고, 한 번의 신청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조정해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2023년 일부 지자체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3월부터 전국 시행을 예고한 상태다.

 

양천구는 전국 시행에 앞서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조직과 시스템을 전면 정비하고 있다. 우선 통합돌봄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 지역 내 돌봄 자원을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한다. 기존에 부서별로 흩어져 있던 돌봄 관련 업무를 하나의 축으로 묶어, 대상자 중심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서비스 연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동주민센터의 역할도 대폭 강화된다. 현장에서 주민을 가장 가까이 만나는 동주민센터에는 ‘돌봄매니저’ 기능이 강화돼, 돌봄 필요 대상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초기 상담부터 서비스 연계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게 된다. 돌봄매니저는 단순 안내 역할을 넘어, 개인의 건강 상태와 주거 환경, 가족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맞춤형 돌봄 계획을 설계하는 핵심 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민관 협력 역시 통합돌봄의 중요한 축이다. 양천구는 의료기관, 요양기관, 복지시설, 민간단체 등이 참여하는 통합지원협의체와 통합지원회의를 운영해 사례별 논의와 조정을 정례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서비스 중복이나 공백을 최소화하고,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 없이 대상자에게 필요한 지원이 제때 제공되도록 한다.

 

서비스 내용도 구체화됐다. 양천구는 의료·요양·건강·주거·생활지원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기본 연계 서비스 34개와 지역 특화 서비스 6개, 총 40개의 맞춤형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방문진료, 방문간호, 방문요양, 가사 지원, 도시락 배달, 일시재가 서비스, 장기요양 연계, 주거환경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돌봄 대상자의 상태 변화에 따라 서비스는 유연하게 조정되며, 필요 시 단계적으로 확대 또는 축소된다.

 

지원 대상은 65세 이상 어르신과 지체·뇌병변 등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다. 신청은 동주민센터 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를 통해 가능하며, 한 번의 신청으로 여러 기관을 오갈 필요 없이 필요한 돌봄을 원하는 장소에서 끊김 없이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돌봄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가족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 구조다.

 

양천구가 강조하는 통합돌봄의 핵심은 ‘사람 중심’이다. 시설 입소 여부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연속성과 존엄을 기준으로 지원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기존 복지 정책과 결이 다르다. 익숙한 동네와 이웃 속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곧 건강과 삶의 질을 지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통합돌봄은 시설 중심의 단절된 지원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의 연속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며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제도 변화 속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행정과 의료·복지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 시행 이전까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양천형 통합돌봄 모델을 완성하겠다”고 덧붙였다.

 

 

통합돌봄은 단기간에 성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그러나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양천구의 선제적 움직임은 돌봄을 ‘시설로 보내는 문제’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바라보는 전환의 신호탄이다. 살던 곳에서, 관계를 잃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 실험이 양천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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