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 문 앞에서부터 탈락한다.”
장애인과 특별한 교육지원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의 교육권을 둘러싼 구조적 차별이 더 이상 개별 사례가 아닌 ‘일상적인 현실’이라는 문제 제기가 공식적으로 제도 심판대에 올랐다. 장애인교육아올다(아올다)를 비롯한 9개 시민사회단체는 2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와 경기·경북·경남 등 각 시도 교육청을 상대로 장애인 등 특별한 교육지원이 필요한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권 차별에 대한 집단 진정을 제기했다.
![]() [코리안투데이] 장애인교육아 © 변아롱 기자 |
단체들은 “중증중복장애, 중증 식품 알레르기, 뚜렛병 등을 가진 아이들이 교육에 있어 출발선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와 정책이 실질적으로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법의 존재와 달리 교육 현장의 차별은 오히려 구조화·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아올다가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올해 진행한 면담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등 특별한 교육지원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은 1인당 평균 4회 이상 교육권 침해 또는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되지 않았다. 입학 단계의 배제, 시험에서의 정당한 편의 미제공, 급식·현장학습·수학여행에서의 배제, 졸업 이후 진학·취업 경로 차단까지 교육 전 과정에 걸쳐 반복되고 있었다.
특히 최중증장애청소년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선택지는 사실상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는 최중증장애청소년 약 8,000명 중 약 3,000명은 전공과 진학, 대학 진학, 취업 어느 경로에서도 연결되지 못한 채 사회적 공백 상태에 놓이고 있다. 교육의 단절이 곧 삶의 단절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법조공익모임 나우의 이수연 변호사는 이번 진정의 법적 쟁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뇌병변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입학 기준을 적용하고, 중증 뇌병변장애 학생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명백한 차별”이라며, 이에 대한 시정 권고를 인권위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증 식품 알레르기를 가진 학생이 차별 없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대학 입학 전형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역시 간접차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급식에서의 대체식 제공, 현장학습·수학여행에서의 안전한 식단 보장조차 이뤄지지 않는 현실은 ‘편의 제공 거부’에 가깝다는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했다. 한국뚜렛병협회 김용은 운영위원은 자신의 자녀 사례를 언급하며 “중학교 3학년에 뚜렛이 발병한 이후 아이는 더 이상 교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학생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해와 낙인 속에서 결국 자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같은 일상을 살 권리가 있다. 교육권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아이를 사지로 내모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중증뇌병변장애인부모회 배경민 공동대표는 장애 영역 간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그는 “특수학교 전공과를 설립해 놓고도 뇌병변장애 학생은 진학할 수 없는 입학 전형을 당당히 운영하는 현실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다른 장애 영역에는 평생교육기관을 허용하면서 뇌병변장애에는 각종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것도 구조적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진정한 복지는 최중증장애를 포함해 모든 장애 영역을 포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이번 집단 진정을 통해 단순한 개별 시정이 아니라 제도 전반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특수교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입학 전형 기준, 정당한 편의 제공 범위, 급식·현장학습 안전 기준, 졸업 이후 진로 연계 체계까지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차별을 방지하고 권리를 구제할 책임이 있음에도, 행정 편의주의적 해석으로 가장 소수이고 가장 중증인 아이들을 배제해 왔다”고 지적했다. 교육이 권리가 아닌 ‘선별된 아이들만 누리는 기회’로 전락한 현실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차별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이번 집단 진정은 인권위의 조사와 권고를 통해 교육 현장의 구조적 차별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교육부와 각 교육청이 그동안 외면해 온 ‘보이지 않는 학생들’을 제도 안으로 어떻게 다시 불러올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육권이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인권위의 판단과 후속 조치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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