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로 나누지 마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종합조사 구간 폐지·24시간 활동지원 촉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5월 29일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광주·대구·부산·대전·경인지역본부 앞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의 ‘구간제’를 폐지하고 필요한 만큼의 활동지원 시간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코리안투데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9일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변아롱 기자

 

“종합점수표 아닌 장애인의 삶을 봐야 한다”, “구간으로 삶을 쪼개지 마라”, “24시간 활동지원 보장하라” 등 구호는 현행 제도의 본질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활동지원 시간은 현재 국민연금공단의 종합조사 항목에 따라 1~15구간으로 구분되고 있는데, 이는 중증장애인의 삶을 ‘점수’로 관리하는 것이며, 실제로 필요한 시간보다 훨씬 적은 지원만이 제공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2019년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전장연은 “‘장애정도’라는 명목으로 등급제가 재생산됨으로써 사실상 폐지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구간제에 따라 한 시간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애걸해야 하는 현실은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는 목소리다. 전장연은 특히 “같은 장애유형·장애정도의 쌍둥이 자매도 구간제에 따라 최대 120시간(4구간)의 활동지원 시간 차이를 겪는다”고 지적하며 제도 부조리의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현행 종합조사는 공인된 특성 평가 방식이라기보단, 방문조사관의 주관적 판단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전장연 보도자료는 “조사 결과가 방문조사관 개인의 견해에 따라 상이하며, 당사자 동의 없는 대리 조사·위협적 이의신청 과정·월권적 점수 조작까지 자행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한, 2022년 고등법원 판결로 항목별 점수는 공개됐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이후에도 점수표 공개 외에 제도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조사관 앞에서 한 시간이라도 더 받기 위해 비굴하게 애원하고, 이의신청도 무시당하는 현실은 권력이 삶을 옥죄는 중”이라고 증언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활동지원이 권리가 아니라 예산에 따라 제공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220명의 활동지원 신청자가 점수나 시간 문제가 이유로 이의신청했지만, 지원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국민연금공단이 행정기관이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공단은 공정한 조사와 제도 개선을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선언하고, 사과하며 권한 범위 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는 개선 약속을 받았지만, 실제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전장연은 앞으로도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중증장애인의 삶을 점수표나 정해진 예산으로 환산할 수 없다. 최소한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하고, 구간제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다. 

 

 

종합조사 구간제는 중증장애인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인 활동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없도록 막아서는 제도적 장애물이다. 이번 동시다발 기자회견은 이를 직접 거부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모여 대한민국 복지의 새로운 전환점을 요구하는 외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이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제는 정책이 아닌 ‘진심 어린 실행’을 보여줘야 할 때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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