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추진 중인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주민들의 주거 희망이 아니라 분쟁의 진원지로 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전국 618개 지역주택조합을 대상으로 분쟁 실태를 조사한 결과, 187개 조합(30.2%)에서 총 293건의 분쟁 사례가 확인됐다. 조합 내부의 운영 비리부터 시공사의 과도한 공사비 증액 요구까지, 조합원 피해는 이미 구조적인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주택조합 제도는 무주택자가 스스로 조합을 구성해 주택을 마련할 수 있도록 1980년대 도입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토지 확보 어려움, 인허가 지연, 추가 분담금 논란 등으로 성공률이 낮고 조합원 피해가 빈번히 발생하는 대표적인 민간 주도형 주택사업으로 전락했다. 실제로 전체 조합 중 절반 이상인 316개는 설립 인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며, 모집 후 3년이 지나도록 설립 인가를 받지 못한 조합도 208곳에 달한다.
분쟁은 조합 단계별로 유형이 다르게 나타났다. 조합원 모집 및 설립 인가 단계에서는 부실한 조합 운영(52건)과 탈퇴·환불 지연(50건)이 주를 이뤘고, 사업계획 승인 이후 단계에서는 여전히 탈퇴·환불 지연(13건)과 공사비 관련 분쟁(11건)이 중심이었다. 특히 조합장이나 시공사의 문제는 조합원 전체에 막대한 부담을 지우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 [코리안투데이] 지역주택조합 기사 장면 ( 사진 = AI 생성 ) © 송현주 기자 |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 조합장이 지정된 신탁계좌가 아닌 사설 금융기관 계좌에 가입비를 받아 챙기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된 경우가 있다. 또 다른 조합의 경우 시공사가 실착공지연과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최초 계약보다 약 50%나 많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해 조합원 분담금이 무려 930억 원이나 늘어나는 상황도 벌어졌다. 심지어 조합원 자격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지속적으로 분담금을 받은 뒤, 반환 요구에도 불응한 사례까지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서울에서 분쟁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110개 조합 중 63개 조합(57%)에서 분쟁이 벌어졌으며, 경기도(32개), 광주(23개) 등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활발한 지역에서도 높은 비율의 분쟁이 나타났다. 이는 도시 지역일수록 조합원 수가 많고 사업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해관계 충돌이 더 쉽게 나타나는 구조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수 실태 점검에 나선다. 8월 말까지 전국 618개 조합 모두를 대상으로 지자체를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주요 분쟁 조합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와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특별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아가 분쟁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제도 개선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지역주택조합의 구조는 조합, 시공사, 업무대행사가 각기 역할을 나눠 운영되지만,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조합원은 대부분 관련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며, 이들을 대리해 사업을 추진하는 업무대행사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여기에 일부 시공사는 공사도급계약 체결 이후 각종 이유로 공사비를 올리거나 사업 지연을 일삼아 조합원들의 부담만 키운다는 비판이 지속돼왔다.
조합원 자격 요건도 까다롭지만, 조합 구성 이후의 검증 절차는 느슨하다. 무주택 세대주이거나 일정 기준 이하 주택 1채 보유 세대주일 것, 해당 지역 6개월 이상 거주 등 요건은 조합설립 인가 신청 시점에 한정되기 때문에 이후의 변경이나 허위 가입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국토부는 이번 실태조사와 특별점검을 통해 조합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제도 개편뿐 아니라 조합 설립부터 인가, 착공, 입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강력한 감시 체계와 책임소재 명확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분양가 상승, 주택난 심화 속에서 많은 이들이 ‘내 집 마련’의 대안으로 선택한 지역주택조합. 하지만 분쟁의 늪에 빠진 현실 앞에서 조합원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이번 전수조사 결과를 계기로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나설 수 있을지, 이해당사자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 송현주 기자 : mapo@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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