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의 첫 정통 사극 ‘왕과 사는 남자’, 세계를 울리다… 흥행 넘어 ‘인간 존엄’의 언어를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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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동작

 

장항준 감독의 첫 정통 사극 왕과 사는 남자가 한국 영화의 흥행 지형을 새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둘러싼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은 단순한 흥행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신들은 이 영화를 두고 한국 사극의 외연을 넓힌 새로운 성취이자, 시대극의 외피를 넘어 인간 존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길어 올린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화려한 궁중 권력사나 거대한 정치 서사를 앞세우기보다, 역사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 끝내 인간다움을 놓지 않는 인물들의 내면을 응시한 점이 세계 평단의 강한 공명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코리안투데이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홍보 사진(사진제공나무위키) ⓒ 박찬두 기자

 

북미 시장의 반응은 특히 뜨겁다. 이 영화는 평단과 대중 양측에서 고른 호응을 얻으며 로튼토마토 팝콘 지수 96%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팝콘 지수는 일반 관객의 만족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대중적 파급력과 입소문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 사극이 북미에서 이처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사례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더욱 각별하게 읽힌다.

 

뉴욕타임즈는 이 작품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권력의 중심이 아닌, 변방의 소외된 인물들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이 경이롭다고 평가하며, 기존 대작 사극들이 왕좌와 궁정의 암투, 정치적 승패의 드라마에 집중해 왔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오히려 곁을 지키는 사람의 숭고함을 전면에 내세운다고 분석했다. 역사를 움직인 거인보다, 역사의 비극을 묵묵히 견딘 이들의 윤리와 정서를 복원한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는 뜻이다.

 

 [코리안투데이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박지훈이 단종 역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박지훈은 단종을 연기하기 위해 15kg을 감량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제공쇼박스, chosun.comⓒ 박찬두 기자

 

버라이어티는 장항준 감독의 연출적 변신에 방점을 찍었다. 오랫동안 유머 감각과 대중 친화적 이미지로 기억돼 온 감독이 이토록 처연하고 묵직한 서사를 완성했다는 점이 놀랍다고 짚으며, 특히 단종의 비극을 다루는 방식이 냉엄한 역사 재현에 그치지 않고 인본주의적 시선(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중심에 두는 관점)으로 관통된다는 점을 높이 샀다. 버라이어티는 영화 전반에 배어 있는 따뜻한 온기를 언급하며, 비극을 다루되 비장함만을 강요하지 않는 정서적 균형이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흥행과 완성도의 핵심 동력으로 꼽았다. 이 매체는 유해진은 투박하지만 진실된 연기로 관객의 감정을 지배하며, 신예 박지훈은 눈빛 하나로 한 시대의 비극을 대변한다고 평했다. 유해진이 구현한 인물의 소박하고 단단한 결은 역사적 비극을 생활의 감각으로 끌어내리고, 박지훈은 말보다 침묵과 표정으로 인물의 깊이를 드러내며 서사의 정서를 떠받친다는 것이다. 두 배우의 호흡은 단지 캐릭터 간 관계를 넘어, 신분과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적 유대를 설득력 있게 완성한 요소로 읽힌다.

 

 [코리안투데이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유해진이 엄흥도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엘르) ⓒ 박찬두 기자

  

유럽과 아시아 언론은 이 영화가 지닌 동시대적 함의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15세기 조선의 실화를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가 오늘을 사는 관객들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핵심적으로 거론된다. 가디언은 “500년 전의 실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책임감이란 무엇인지 묻는다고 보도했다. 단종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엄흥도의 선택은 단순한 충절의 재현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타인을 위해 끝까지 곁에 남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되묻게 만든다는 해석이다. 이 영화가 과거를 재현하면서도 현재의 윤리적 공백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는 분석이다.

 

아시아 영화 전문 매체 아시안 무비 펄스 역시 정치적 사건의 이면에 놓인 인간적 결속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쿠데타라는 정치적 사건 뒤에 가려진 인간적 유대감을 세밀하게 포착했다고 평가하며, 영화가 역사적 대사건의 설명에 몰두하기보다 그 비극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 사이의 정서와 침묵, 기다림과 헌신을 집요하게 비춘다고 짚었다. 나아가 한국 특유의 ()’의 정서, 곧 오래도록 풀리지 않은 슬픔과 응어리, 체념과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응축된 감정이 어떻게 보편적 감동으로 전환되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지역적 정서가 오히려 세계적 공감의 통로가 되었다는 뜻이다.

 

 [코리안투데이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전미도가 매화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 globalepic) ⓒ 박찬두 기자

  

대만과 홍콩 매체들 역시 현지의 뜨거운 관람 열기를 전하며, 특히 박지훈이 보여준 섬세한 감정 연기가 젊은 관객층의 유입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이 작품이 전통적 사극 관객층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젊은 세대에게도 감정적으로 접근 가능한 영화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조선 전기의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고독과 관계의 진심이 세대 장벽을 넘어 전달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작품을 둘러싼 외신의 평가는 찬사 일변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술적 성취와 연출 방식에 대한 입체적 비평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장항준 감독은 인터뷰에서 고증을 철저히 하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는 과감히 걷어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고증은 특정 시대의 복식, 언어, 공간, 생활양식 등을 역사 기록과 연구에 맞게 재현하는 작업을 뜻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이러한 고증의 엄밀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관객의 감정선을 흐릴 수 있는 장식적 요소를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이야기의 중심을 선명하게 세운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리안투데이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유지태가 수양대군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내러티브 드림ⓒ 박찬두 기자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화 말미의 스태프 크레딧 처리 방식, 그리고 수양대군 역의 카메오 출연을 배제한 선택이 거론된다. 일반적으로 상업영화는 엔딩에서 긴 크레딧을 통해 제작 참여자들을 상세히 표기하지만, 이 작품은 감정의 여운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형식을 조절해 오직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에 몰입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또한 역사극에서 자칫 강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수양대군의 직접적 장면 활용을 절제함으로써, 권력 찬탈의 정치극보다 유배지에서 피어난 관계의 깊이에 서사를 집중시킨 점 역시 대담하고 효과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논쟁 지점도 있다. 영월의 자연경관은 장엄하고 서정적으로 포착됐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일부 장면, 특히 호랑이 CG 등에서는 한국 영화의 자본적 한계가 드러난 부분이라는 냉정한 지적도 제기됐다. CG는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s)을 뜻하며, 실제 촬영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일부 외신은 해당 장면의 완성도가 세계 최고 수준의 블록버스터와 견주기에는 다소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다수 평론가는 이러한 기술적 미흡이 영화 전체의 감동을 훼손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서사의 진정성과 배우들의 연기, 연출의 절제된 힘이 시각적 한계를 충분히 넘어선다고 입을 모았다.

 

  [코리안투데이강원도 영월 청룡포 어소 담장 밖에서 어소를 향해 허리를 구부린 채 예를 다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관음송(사진제공여행자의 집ⓒ 박찬두 기자

  

결국 외신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지점은 이 영화가 사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라, 버려진 자리에서 끝내 서로를 지키려 했던 두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장 근원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때문에 세계 언론은 이 영화를 흥행작이라기보다 치유의 시네마에 가깝다고 규정한다. 상처 입은 시대, 불신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한 사람의 곁을 지킨다는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를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증명한다는 것이다.

 

유배지에서의 기묘한 동거가 우정과 헌신의 서사로 확장되고, 그것이 다시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감동으로 번져가는 과정은 한국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26개 도시를 포함해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는 이 영화의 행보는 K-콘텐츠의 확장이라는 산업적 의미를 넘어, 한국 영화가 지닌 정서적 깊이와 윤리적 상상력이 세계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의 성취는 결국 명확하다. 이 영화는 역사 속 패자(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비극을 맞은 존재)의 눈물에 머물지 않고, 그 곁을 지킨 이름 없는 사람의 품위까지 복원했다. 그리고 그 복원은 500년 전의 약속을 오늘의 감정으로 되살려낸다. 그래서 이 작품의 흥행은 숫자의 기록이기 이전에, 한국 영화가 인간 존엄의 언어로 세계와 소통한 하나의 사건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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