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속 피아니스트의 시선은 정면을 보지 않는다. 약간 옆으로, 그러나 멀리.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아마도 악보도, 객석도 아닌 ‘시간’이 있을 것이다. 오는 12월 27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함수연 피아노 독주회 〈Romantic Chaos〉는 그렇게 시작된다. 질서와 감정, 이성과 낭만이 뒤엉킨 이름부터가 이 연주회의 성격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 [코리안투데이 ]함수연의 피아노가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묻는 질문 © 김현수 기자 |
프로그램은 흥미롭다. 프레데리크 쇼팽, 탄둔, 프란츠 리스트. 시간으로 보면 한 세기를 훌쩍 넘고, 미학으로 보면 서로 다른 세계에 서 있는 작곡가들이다. 흔히 이런 조합은 ‘대비’라는 말로 설명되지만, 이 연주회는 대비보다 ‘충돌’에 가깝다. 고요한 서정과 실험적 사운드, 극단적 감정과 절제된 구조가 한 무대 위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이 가장 매혹적인 순간은, 완벽하게 정돈된 악보가 연주자의 손을 통해 흔들릴 때라고 생각한다. 그 흔들림은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숨결이다. 쇼팽의 선율이 지나치게 아름다울 때조차 어딘가 불안하게 들리는 이유, 리스트의 화려함이 때로는 고독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여기에 탄둔의 음악이 더해지면, 우리는 더 이상 ‘낭만’이라는 단어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낭만은 깨지고, 질서는 흐트러지며, 그 틈에서 음악은 다시 태어난다.
함수연의 연주는 늘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안전한 선택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번 독주회 역시 ‘잘 치는 연주회’가 아니라 ‘왜 이 곡들을 지금 연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연주자는 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건반 위에서 질문을 반복할 뿐이다. 그것을 듣고 해석하는 일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연말의 예술의전당은 늘 분주하다. 화려한 프로그램, 이름값 있는 무대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독주회는 그 흐름 속에서 조용히 다른 길을 택한다. 낭만을 낭만답게 소비하지 않고, 혼돈을 혼돈으로 방치하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음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내면은 지금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가, 혹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가.
12월 27일 밤 8시, 리사이틀홀에서 우리는 아마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연말에 음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물일지 모른다.
[김현수 기자 :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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