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만에 11월에 내린 눈으로는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폭설이었지요.
감장을 하기 위해 배추를 가지러 갈 겸 오랜만에 고향 여주를 찾았습니다. 강변에서는 폭설에도 아무 말 없이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산과 들은 햇빛에 하얗게 빛나며 눈부셨습니다. 그야말로 설국이 따로 없었지요.
설경을 보고 싶어 뒷동산에 올랐습니다. 산길 곳곳엔 눈이 덮여 있었고, 눈이 녹아 있는 곳에는 솔잎이 떨어져 폭신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솔잎들은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죽어서도 향기를 내뿜는 솔잎이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잎을 떨군 참나무와 오리나무 등은 나목이 되어 고요히 명상에 잠긴 듯했습니다.
그런데 큰 소나무 가지 하나가 꺾여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폭설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것입니다. 그 가지를 들어 길가로 옮기며 안타깝고 아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줄기를 올려다 보니 떨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보여 얼마나 아플까 싶었습니다. 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햇볕을 받으려고 가지를 뻗으며 폭염 속에서도, 폭우 속에서도 오랜 세월을 견뎌 왔을 텐데, 이번 폭설은 끝내 이겨내지 못한 것입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문득 노자(老子)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는 뜻이지요. 나무도 생명인데, 살기 위해 애써 왔을 텐데, 하루아침에 가지를 꺾다니요. 얼마나 어질지 못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늘 그런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비와 바람, 눈으로 생명을 키우기도 하지만, 폭우와 강풍, 폭설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기도 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천지가 어질지 못하다는 뜻이겠지요.
숲속으로 눈길을 돌리니 더 큰 나무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려고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뭇잎이 두껍게 쌓인 숲 바닥은 마치 솜이불처럼 폭신했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가지가 아니라 나무의 줄기가 중간에서 부러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줄기마저 부러졌을까요. 부러진 자리는 누렇게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줄기를 만지며 얼마나 또한 아팠을까 생각하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줄기를 올려다 보니 중간이 뚝 부러져 나간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무거운 눈이었기에 줄기가 부러졌을까요. 수십년 만에 나무들 사이를 뚫고 솟아 오르며 자라온 줄기가 하루 아침에 부러졌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아플까요.
세한연후지송백지조(歲寒然後知松柏之凋)
공자님은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나무의 푸르름은 군자의 절개를 뜻한다지요.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군자와도 같은 소나무가 무거운 눈에 꺾인 것입니다. 마치 군자가 꺾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삶에도 이런 양면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주변사람들이 이로움을 주다가도, 때로는 해로움을 주고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남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어른들은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는 즐거운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숲속의 나무들은 꺾이고 부러져 아픈데도 사람들은 그런 아픔과 상처를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습니다. 그게 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꺾이지 않고 남은 나무의 줄기는 죽지 않고 내년 봄에는 아픔과 고통을 잊고 새 가지를 틔우며 다시 살아갈 것입니다. 꺾여도 삶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도 꺾여 고통스럽더라도 숲속 나무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서 굳건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