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지 않는 사회, 깊어가는 자영업자의 한숨

술 권하지 않는 사회, 깊어가는 자영업자의 한숨

 

한국 사회의 술잔이 비어가고 있다. 한때는 관계를 맺고, 위로를 나누던 술자리가 이제는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는 시대다. 거리마다 넘쳐나던 주점의 불빛은 희미해지고, 술 냄새 대신 침묵이 깃든다. ‘술 권하지 않는 사회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며, 술 소비는 급감하고, 젊은 세대는 술잔을 내려놓는다.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벼랑 끝에서 한숨을 내쉬고, 주류 산업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이 변화의 물결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깊은 사회적 전환의 신호다.

  

 [코리안투데이맥주와 똑 닮은 맛이지만 취하지는 않는 무알콜 맥주’(사진제공샐러던트리포트ⓒ 박찬두 기자

 

과거 한국 사회에서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직장인의 덕목이자, 관계의 윤활유였다. 그러나 이제 그 풍경이 달라졌다. ‘술 권하지 않는 사회라는 표현이 자리 잡으며, 개인의 의사와 건강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장 건강한 음주는 한 잔도 마시지 않는 것이라는 선언이 사람들의 인식을 뒤흔들었고, 술 강요는 점차 과거의 유물로 여겨진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며 혼술(혼자 마시는 술)’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가 자리 잡았다. 술은 더 이상 타인과의 연결 고리가 아니라, 개인의 작은 즐거움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코리안투데이젊은이들이 술 대신 커피나 물을 들고 대화하는 모습(사진제공: lovepik) ⓒ 박찬두 기자

 

젊은 세대, 이른바 MZ세대가 이 변화를 주도한다. 그들은 부어라 마셔라식의 강압적 회식 문화를 거부하고, ‘회식은 자유롭게, 술은 취향껏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운다. 건강과 자기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음주가 신체적·정신적 웰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경계한다.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술을 마시지 않는 삶에 호기심을 갖는 트렌드)’라는 단어가 이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술 대신 다양한 여가 활동과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하며,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효율성을 추구한다.

 

 [코리안투데이글로벌 주류 기업 매출 변화율(자료제공한경ⓒ 박찬두 기자

 

경제적 부담도 젊은 세대가 술을 멀리하는 이유다. 술자리의 비용은 가벼운 지출이 아니다. 고물가와 생계비 상승의 시대에, 술잔을 채우는 대신 가처분 소득을 아끼는 선택이 자연스럽다. 술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주요 주류의 출고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국제주류시장연구소(IWSR) 역시 전 세계 주류 소비량의 감소 추세를 보고하며, 이 흐름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코리안투데이서울 명동거리 한 공실 상가의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박찬두 기자

  

술 소비의 급감은 주류 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분기 술집 매출은 전년 대비 9.2% 급감하며 외식 업종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주점가의 밤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국세청 통계는 2023년 사업자 폐업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음을 보여주며, 창업 후 5년 생존율은 6%대에 머문다.

 

 [코리안투데이임대문의가 붙은 상가(사진제공연합뉴스) ⓒ 박찬두 기자

 

특히 음식점과 주점업은 과도한 경쟁과 낮은 수익성으로 생계형 자영업의 대명사가 됐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약 23.2%,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내수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 최저임금 인상 등 복합적 요인이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코리안투데이무알콜 음료 시장 성장 전망(자료제공한경ⓒ 박찬두 기자

 

주류 산업 역시 위기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주세 수입은 줄어들고, 도매업체들은 유통망 위축으로 고전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음주량 자체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에 있어 내수가 회복되더라도 주세 수입이 크게 늘기 어려울 것이라며 구조적 변화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하이트진로, 롯데칠성 같은 주요 기업들은 해외 시장 진출과 저도주, 무알코올 음료 개발로 돌파구를 모색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옛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이다.

 

자영업 위기의 근본 원인은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구조적 전환기로 진단한다. 인구 구조 변화와 소비 환경의 재편이 자영업 시장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소비 수요를 위축시키며 자영업의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 전망한다. 디지털 환경 적응의 어려움도 문제다. 배달앱 수수료 부담과 온라인 판매 채널 활용의 미숙은 자영업자들에게 새로운 장벽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이 단기적 효과는 있으나, 경쟁력 없는 업체의 성장 없는 생존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코리안투데이미국 연령별 음주율 변화(자료제공한경ⓒ 박찬두 기자

 

전망은 어둡지만,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다. 젊은 세대의 비음주 및 절주 문화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가속화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선택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 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 주류 산업은 취하기 위해마시는 문화를 넘어, ‘즐기기 위해마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무알코올 음료와 프리미엄 주류, 다양한 풍미의 칵테일이 시장을 채우며, 홈술과 혼술 트렌드가 새로운 소비층을 형성한다.

 

자영업자들에게도 변화는 필수다.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이들만이 생존을 넘어 성장을 꿈꿀 수 있다. 정부 역시 파편화된 지원 제도를 통합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자영업자를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희망리턴패키지같은 재기 지원 프로그램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술잔이 비어가는 이 시대는 단순한 소비 패턴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신호다. 술 강요가 사라지고,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함께 품는다. 주점가의 어두운 밤이 지나고, 더 나은 내일의 빛이 비치기를 소망한다. 술잔은 비었을지언정, 우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채워질 여백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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