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다발은 신문지에 덮어 쓰레기처럼 위장했고, 금괴는 등산배낭 속 깊숙이 숨겼다. 국세청이 밝혀낸 고액상습체납자들의 은닉술은 범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치밀하고 대담했다. 2025년 6월 10일, 국세청은 고의적으로 세금 납부를 회피한 체납자 710명에 대한 재산 추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들의 실태와 징수 사례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위장이혼, 종교단체 기부, 편법배당을 통한 재산분산부터 차명계좌와 은행 대여금고 이용, 해외도박과 명품 소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은닉과 호화생활을 일삼는 이들을 정조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다섯 가지였다.
![]() [코리안투데이] 고액상습체납자 보도자료 © 송현주 기자 |
첫 번째는 배우자와 위장이혼을 하고 재산을 분할한 후 동거를 계속하며 징수를 피한 경우다. 체납자는 이혼 직후 본인 명의 아파트를 배우자에게 넘기고, 계속해서 동일한 주소지에서 생활했다. 국세청은 이를 ‘사해행위’로 판단, 민사소송을 통해 재산 반환을 청구했다.
두 번째는 법인이 법인세 신고 전부터 편법배당을 계획해, 껍데기 회사처럼 만든 뒤 고의로 세금 납부를 회피한 사례다. 주주에게 배당금을 넘기고 법인을 청산한 뒤, 국세청의 민사소송과 가압류 조치가 이어졌다.
세 번째 사례는 부동산컨설팅업을 하는 체납자가 가족 명의로 상가 10채를 명의신탁해 은닉한 건이다. 그는 호화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전입신고는 소형 오피스텔로 했고, 국세청은 일가족 모두를 방조범으로 고발했다.
네 번째는 사채업자로부터 비롯된 체납 사례다. 고액 이자수익을 대여금고에 현금과 수표로 숨겼고, 국세청은 해당 금고를 압류해 수억원을 징수했다.
마지막은 주소지를 허위로 이전하고 실제로는 고가주택에 거주하며, 자녀 명의로 임차한 집에서 명품 시계, 귀금속, 현금을 숨긴 사례다. 개인 금고에 보관된 물품은 국세청에 의해 모두 압류됐다.
이 외에도 등산배낭 속 금괴 수백돈, 발코니 쓰레기더미 속 10만원권 수표 수천 장, 고성·위협에도 집행을 강행한 수색 과정까지, 체납자의 다양한 수법과 국세청의 집요한 추적이 속속 드러났다. 국세청은 지난해에도 2조8천억 원 규모의 체납세금을 징수했고, 올해 역시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실거주지 분석, 국외 협조 확대, 징수포상금 제도 강화 등 강도 높은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국세청은 생계형 체납자에 대해서는 유예, 분납, 징수특례 등을 통해 경제적 재기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성실 납세자와의 형평성, 조세정의를 지키기 위한 이중 전략이 함께 병행된다.
은닉재산에 대한 시민 제보도 독려하고 있다. 국세청 홈택스와 누리집에서 명단을 확인하고 제보할 수 있으며, 징수 금액에 따라 최대 수억 원의 포상금도 지급된다. ‘세금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명제 아래, 국세청의 칼날은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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