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예술, 111개의 폐지관으로 울리는 부산 산업의 숨결,2부

경계의 예술, 111개의 폐지관으로 울리는 부산 산업의 숨결,2부
✍️ 기자: 김현수

 

부산 동구 동일고무벨트 옛 공장에 불어온 예술의 바람이 낡은 콘크리트 벽을 넘어 감각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경계의 예술’을 화두로 삼은 한원석 작가의 개인전 지각의 경계: 검은 구멍 속 사유는 산업유산을 예술의 무대로 전환시키며 관람자에게 시공간을 허무는 경험을 선사한다.

 

경계의 예술, 111개의 폐지관으로 울리는 부산 산업의 숨결,2부

 [코리안투데이] 폐허 속 울림, 감각의 경계를 허무는 설치예술  © 김현수 기자

 

이번 전시는 111개의 폐지관(紙管)을 설치한 대형 울림통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 지관은 직경 431 mm, 266 mm, 169 mm, 146 mm, 94 mm 등 다양한 크기를 지니며, 내부에 내장된 스피커는 관람객이 일정 범위 내로 접근할 때만 소리를 낸다. 이때 출력되는 음향은 과거 동일고무벨트 공장 가동 당시의 고무벨트 작동 주파수 및 RPM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안투데이] AR과 소리가 교차하는 지각의 실험  © 김현수 기자

 

관람객이 지관에 접근하거나 물러설 때, 작품은 침묵과 울림, 부재와 존재 사이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그려낸다. 이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행위를 넘어, 관객과 작품이 상호작용하는 *관계적 감각의 장(場)* 을 형성한다. 이러한 설치 방식은 시각 중심의 예술 감상 방식을 뒤흔들며, 감각이 교차하고 경계가 재협상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코리안투데이] 80년 공장의 기억, 예술로 소환되다  © 김현수 기자

 

2층 전시장에서는 AR(증강현실)을 활용한 체험형 설치가 펼쳐진다. 관람객은 AR 기기를 착용하고 현실 바닥에 존재하지 않는 검은 구멍을 보게 된다. 이 허구적 공간은 실제와 환상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며, ‘지각’이라는 감각 자체에 대한 반추를 유도한다.

 

 [코리안투데이] 관계적 상호작용이 만드는 감각의 네트워크     ©김현수 기자

 

기획자 김최은영은 이 전시를 들뢰즈-가타리의 리좀 개념에 빗대어 해석한다. 그는 폐지관 설치를 “위계 없는 다방향 연결 구조”로 보며, 관람객의 접근 방식에 따라 무한한 의미 연결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작품은 중앙 중심 없이 어디서든 다른 지점과 만나며, 예측할 수 없는 감각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 [코리안투데이] 리좀 구조로 해석한 설치미술의 새로운 전개     ©김현수 기자

 

한원석은 자신의 작품을 “감각적 반란”이라 명명한다. 그는 후각, 청각, 촉각 등 시각 이외 감각을 중심에 놓고 예술적 언어를 모색해왔다. 담배꽁초의 향기, 기름때의 끈적임, 고무의 냄새 등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의 흔적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폐지관 설치와 융합되며, 관람자는 자신의 감각을 전면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코리안투데이] 정체성과 결핍, 감각으로 복원된 시간의 조각     ©김현수 기자

 

동일고무벨트 전시장소는 1,000여 평에 이르는 산업 공간으로, 이 거대한 공간은 전시의 또 다른 재료가 된다.  전시 주최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며, 시월페스티벌과 여러 기관이 후원 및 협력으로 참여한다.

 

 [코리안투데이] 시각을 해체하다, 감각 중심 예술의 전환점  © 김현수 기자

 

이 전시는 광복 이후 부산 산업의 기억과 경험의 재소환이기도 하다. 동일고무벨트는 과거 국내 고무벨트 산업의 상징이었고, 이 공장은 한국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생성된 기억과 이미지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다.  전시는 이 기억을 예술적으로 전유하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 변화 가능한 미래의 감각 지형을 펼쳐 보인다.

 

 [코리안투데이] 산업유산 공간에서 되살아나는 경계의 서사  © 김현수 기자

 

폐허 속 울림의 예술은 이제 관람자의 움직임, 호흡, 인지와 맞닿는다. 경계의 예술은 단지 담론이 아니라 몸과 감각으로 통과되는 경험이다. 관람자는 작품의 일부가 되어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지각적 내러티브를 열어간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남기기

📱 모바일 앱으로 더 편리하게!

코리안투데이 관악를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신 뉴스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