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1화: 동명성왕, 동아시아에 새로운 별이 뜨다

[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1화: 동명성왕, 동아시아에 새로운 별이 뜨다

2025년 대한민국, 수많은 청년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한다. 불확실한 미래, 박한 자본, 험난한 경쟁 속에서도 ‘한 방’을 꿈꾸며 도전한다. 그런데 이런 창업자 정신의 원형이 2,000년 전 한반도 북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기원전 37년, 22세의 청년 하나가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도주했다. 재산은 없었지만, 꿈은 있었다. 박해를 피해 달아났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주몽(朱蒙), 후에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불리게 될 고구려의 건국자다. 그가 세운 나라는 705년간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제국이 되었다.

실패와 박해를 딛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 청년 주몽.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존경받는 것처럼, 고대 동아시아에서도 주몽은 최고의 영웅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도전과 혁신, 그리고 성공의 실제 역사다.

시대의 풍경

기원전 1세기 초, 동북아시아는 격동의 시대였다. 한반도 북쪽과 만주 일대에는 부여(扶餘)라는 강력한 왕국이 존재했다. 부여는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며 철기 문화를 꽃피운 선진 문명국이었다. 그러나 왕실 내부의 권력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은 종종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전한(前漢) 왕조가 쇠퇴하고 있었다. 한나라는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 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이 그것이다. 이들은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전파하는 창구이자, 동시에 토착민들을 억압하는 식민 통치의 전초기지였다.

“옛적에 시조 추모왕(鄒牟王)이 나라를 세우셨다. 왕은 북부여에서 나셨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이시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날 때부터 성스러우셨다.”

– 광개토왕릉비문(廣開土王陵碑文), 414년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전한(前漢) 말기 – 왕망의 신(新)나라가 곧 등장

🗿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 팍스 로마나의 전성기

🌏 인도

샤타바하나 왕조 – 불교 문화 융성

⚔️ 그날의 현장

“죽일 생각이오? 어서 죽이시오! 하지만 기억하시오.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이오. 당신들 같은 자들이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

기원전 38년 가을, 부여 궁궐의 한 구석. 왕자 대소(帶素)와 그의 형제들이 주몽을 에워싸고 있었다. 활쏘기, 말타기, 무예 — 무엇 하나 주몽을 이길 수 없었다. 질투와 두려움은 곧 살의로 변했다. 그날 밤, 어머니 유화부인의 경고를 듣고 주몽은 결심했다. “이곳에 남아 죽을 것인가, 아니면 떠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것인가?” 22세 청년의 선택은 명확했다. 도전이었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주몽의 출생 신화는 환상적이다. 해모수(解慕漱)라는 천제의 아들이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 결과 태어난 아이가 주몽이다. 유화는 거대한 알을 낳았고, 그 알에서 나온 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말을 했고, 일곱 살에는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주몽(朱蒙)’ — 부여 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신화적 윤색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그 이면에 숨은 진실을 주목한다. 주몽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부여의 왕실이나 귀족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광개토왕릉비(414년 건립)에는 “시조 추모왕(鄒牟王)”이라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주몽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고구려 왕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 인물임을 증명한다.

주몽이 부여를 탈출한 이유는 명확하다. 능력 있는 인재에 대한 왕실의 질투와 박해였다. 금와왕(金蛙王)의 아들 대소는 주몽이 자신의 왕위 계승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오늘날 대기업에서 능력 있는 직원이 경영진의 견제를 받는 것과 유사한 권력 투쟁이었다. 주몽은 어머니의 조언을 듣고,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세 명의 동료와 함께 남쪽으로 도주했다. 이것은 고대판 ‘팀 창업’이었다.

건국 연도

기원전 37년

주몽 나이

22세

초기 동료

오이, 마리, 협보

국호

고구려(高句麗)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주몽은 실존 인물이며, 부여계 집단이 남하하여 토착 맥족과 연합해 고구려를 건국했다. 건국 신화는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후대의 윤색이다.

대안적 견해

부여의 동명왕 설화와 고구려 주몽 신화가 혼재되어 있으며, 실제 건국 과정은 더 복잡한 부족 연합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 우리에게 묻다

주몽의 이야기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바로 ‘스타트업 정신’이다. 안정된 부여를 떠나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 22세 청년. 자본도 없고, 땅도 없고, 군대도 없었다. 오직 능력과 비전, 그리고 함께할 동료 세 명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은 ‘스타트업 강국’으로 불린다. 쿠팡, 배달의민족, 토스 같은 유니콘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의 창업자들도 주몽처럼 기존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K-스타트업의 DNA는 이미 2,000년 전 주몽에게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구분 주몽 (BC 37년) 현대 창업자
출발점 부여 탈출, 무일푼 대기업 퇴사, 학자금 대출
핵심 역량 활쏘기, 말타기, 리더십 코딩, 마케팅, 비즈니스 모델
성공 요인 비전, 팀워크, 집행력 아이디어, 실행력, 투자 유치

📚 더 깊이 알아보기

  • 이규보의 『동명왕편』(1193년) – 고려 시대 문인이 쓴 주몽 서사시
  • 광개토왕릉비 – 414년에 건립된 1차 사료, “시조 추모왕” 명시
  • 압록강 유역 고구려 유적 – 국내성, 환도산성 등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주몽은 단순히 2,000년 전에 죽은 왕이 아니다. 그는 오늘날 서울 강남의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판교 테크노밸리의 개발자 모니터 앞에서, 여의도 벤처캐피탈의 투자 회의실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 박해와 역경,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 — 이것이 바로 주몽이 2,000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하여 여기까지 왔으나, 나는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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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23화: 에필로그 – 2,225년 역사가 남긴 것

BC 2333 ~ BC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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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2화: 부여에서 고구려로 – 계승과 독립의 이중주

BC 37 ~ AD 668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고구려 편 (총 40편) –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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