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고 있지만, 그 포옹에는 이상하게도 끝의 온기가 있다.
전시 제목처럼, 헤어지는 기쁨은 모순적인 말이다. 우리는 보통 이별을 상실로 배운다. 그러나 이 이미지 앞에 서면, 이별은 꼭 잃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코리안투데이] 놓아주는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 © 김현수 기자 |
사랑은 언제나 붙잡는 행위로 오해된다. 더 오래, 더 가까이, 더 단단히. 하지만 어떤 사랑은 놓아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사진 속 인물의 눈빛은 상대를 붙들기보다, 이미 마음속에서 한 번 다녀온 작별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얼굴이다. 그 표정에는 원망도, 후회도 없다. 다만 “여기까지였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한 평온이 있다.
우리는 이별을 실패라 부르지만, 사실 이별은 관계가 끝났다는 증거가 아니라 관계가 존재했다는 증거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헤어질 이유도 없다. 그러니 이별의 순간에 남는 슬픔은 사랑의 크기만큼 생겨난 그림자일 뿐이다. 그림자가 짙다는 건, 그만큼 빛이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진이 흥미로운 이유는, 작별의 장면을 비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 데 있다. 눈물도 없고, 절규도 없다. 대신 아주 일상적인 포옹. 마치 “잘 지내”라는 말 대신, 몸으로 남겨두는 마지막 문장 같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한 감정들이 어깨와 손끝에 잠시 머물다 흘러간다.
헤어지는 기쁨이란, 어쩌면 상대를 잃어서 생기는 기쁨이 아니라나 자신을 다시 돌려받는 기쁨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건네준다. 이별은 그 조각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아프지만, 숨을 쉴 수 있게 되는 순간.
이 전시는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별을 기억하고 있나요?”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다.
“그 이별 덕분에 지금의 당신이 있는 건 아닐까요.”
이별은 끝이 아니다.
이별은 다음 계절로 넘어가기 전, 잠시 멈춰 서는 문턱이다.
그 문턱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다.
사랑이 우리를 떠난 게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주고 조용히 손을 놓았다는 것을.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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