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구나무 아버지

                                       이혜선

 

 아버지

 어젯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 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너다보는 그 눈길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 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오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개짓 배워 다 날아가 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바쁘지?

 내 다아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산바라기 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땡볕도 천둥도 막아 주는 마을 앞 둥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나무 될게요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 펴고 장기 한 판 두시면서

너털웃음 크게 한 번 웃어보세요

주름살 골골마다 그리움 배어

늘따라 더욱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KBS 1 TV ‘아침마당에 낭송된 시 (1999. 5. 3)

 

 

  [코리안투데이]  문예바다 서정시선집19불로 끄다물에 타오르다》, 이혜선  © 백창희 기자

 간장사리

                            이혜선

 

시어머니 제사 파젯날

베란다 한 구석에 잊은 듯 서 있던 간장 항아리 모셔와

작은 병에 옮겨 부었다

20년 다리 오그리고 있던 밑바닥을 주걱으로 긁어내리자

연갈색 사리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툇마루도 없는 영주땅 우수골 낮은 지붕 아래

허리 구부리고 날마다 이고 나르던

체수 작은 몸피보다 더 큰 꽃숭어리들

알알이 갈색 씨앗 영글어 환한 몸 사리로 누우셨구나

 

내외간 살다보먼 궂은 날도 있것제

묵은 정을 햇볕 삼아 말려가며 살아라

담 너머 연기도 더러 챙기며

묵을수록 약이 되니 사리 하나 품고 살거라

 

먼 길 행상 가는 짚신발 행여나 즌데를 디디올셰라’*

명일동 안산에 달하 노피곰 돋아서

어긔야 멀리곰 비추고 있구나*

 

이승 저승 가시울 넘어 맨발로 달려오신

어머니의 간장사리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차용

 

  [코리안투데이] 이혜선, 간장사리 _ 간장 항아리에서 발견한 시인 만의 시어    © 백창희 기자

이혜선 시인(호 滋忞)이 최근 문예바다 서정시선집 불로 끄다물에 타오르다를 출간하며 문단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이 시집은 이혜선 시인의 지난 삶에서 느낀 결핍과 갈망내적 치유의 과정들을 시적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둥구나무 아버지>와 <간장사리>는 아버이를 그리는 깊은 사랑과 감동을 준다.

삶의 굴레 속에서 피어난 시적 고백

이혜선 시인은 이 시집을 엮으며 여자라는 삶의 덫에 치여 내 꿈의 별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거리며 살아온 지난 날들이 젊은 시절의 시 속에서 아프게 걸어 나오는 듯하다고 밝혔다어린 시절부터 쉽게 변하는 인간은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으나인생의 많은 핑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하지만 그녀는 시를 통해 결핍과 갈망을 표현하며,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시인의 피를 타고났나 보다라는 고백으로 자신이 시에 대한 운명적 소명을 지녔음을 강조했다.

 

총 72편의 시깊은 내적 성찰

이 시집은 총 72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1부 <누가 나뭇잎 푸른 손 흔드나>에서 182부 <돌의 심장 근처 어디쯤>에는 173부 <억겁을 찰나로 불타고만 있는지>에는 194부 <젖어서야 타오르는 꽃불 하나>에는 17편의 시가 담겼다후문에는 <서정을 향하다닿을 수 없는 별에 닿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시인의 철학적 성찰이 덧붙여져 있다.

 

시는 이상주의자의 꿈

이혜선 시인은 시는 일상의 메너리즘에 빠진 삶을 일깨우고삶의 본질에 가닿게 해준다고 강조하며시는 그리움과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하고슬픔과 아픔의 껍질을 깨뜨려 치유로 다가가게 한다고 말했다이혜선 시인은 안에서 독자들이 일상적인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꿈을 꾸고더 깊은 차원의 성찰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문단의 관심과 독자들의 기대

이혜선 시인은 1950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81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 후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이혜선 시인은 윤동주 문학상동국문학상문학과비평가협회 평론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이번 시집은 이혜선 시인이 인생에서 느낀 갈망과 결핍그리고 그 치유 과정을 담아내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K-문학으로 한국의 서정을 세계로 알림

최근 이혜선 시인의 시 <숲속 마을에는>,<불이不二, 서로 기대어>는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 매거진(2024.7.18), 파키스탄 신드쿠리에 신문, 방글라데시 코비알 24매거진, 이집트 라이프 매거진, 그리스 폴리스 매거지노, 코소보의 오르페우스 매거진, 글라데시 코비알 24 매거진, 벨기에 포에틱 갤럭시 아투니스 매거진, 독일의 레이븐 케이지 매거진 등에 등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문학 서정을 알리는 큰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Leave a Reply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