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몬 손중하의 ‘국화꽃 베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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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해운대

 

하루일과가 끝나고 학교운동장이나 교실 주변을 거닐다 보면 가끔 아이들 겉옷이 눈에 뜨인다. 아마 운동장에서 놀다가 더우니까 벗어놓은 모양이다. 혹시 잊고 간 것 같아서 분실함에 넣어두고 기다려 봐도 찾아가는 아이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방송 조회시간에 분실물을 찾아가도록 안내를 하여도 그대로이다. 그런 물건 중에는 비교적 값이 비싸거나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는 새것도 있다. 더러 훈화시간에 아이들 교실에 들어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잃은 물건을 찾지 않는 이유를 알만했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도 조금 입으면 실중이 난단다. 그리고 잃어버렸다고 하면 다시 새것으로 사준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굳이 입던 옷을 찾을 필요가 없음직하다. 물론 부모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옷을 분실하고도 찾지 않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꾸지람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들, 그들의 부모들은 경제적인 부를 얼마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일까 궁금증이 간다.

지난여름 휴가에 무주 구천동엘 갔다. 냇가에서 여러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그 마을 아이들 같았다. 미역을 감으며 노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그들의 노는 모습을 보며 내 어릴 적 생각에 젖어 있을 때 6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다 낡은 덧신 한 짝을 들고 울고 있는 것이다. 수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덧신 한 짝이 떠내려간 것 같았다. 걸 찾느라 울고 있는 것이다. 다 낡아빠진 이제 낡아서 버림직도 한 덧신 한 짝을 가지고 ……

나중에 알고 보니 생일 때 이모가 옥수수를 팔아서 사준 선물이란다. 울고 있는 그 아이의 심정을 이해 할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던가 싶다. 그 때 아버지께서 검정 운동화를 사 주신 적이 있다. 검정고무신을, 그것도 떨어지면 몇 번이고 꿰매어 신던 그 시절에 내게 있어서 운동화는 얼마나 가슴 설레는 선물이었는지 모른다. 학교에 등교하여 복도에 있는 신발장에 운동화를 넣고 교실에 들어와 공부를 하는데 온통 정신이 신발장에 가 있기도 했고 집에 오는 길엔 그 운동화가 닳아 없어 질까봐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손에 들고 맨발로 오거나 사람들이 보일 때는 운동화를 신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신고 다녔다기보다는 품고 다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지금도 내겐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선물로 기억되고 있다.

가끔 손자가 주말에 찾아오면 무엇인가 갖고 싶은 것을 사주려고 시장을 가게 되는데 어떤 것을 사 주어도 내 아버지가 사주셨던 그 운동화만큼 기쁨이나 행복감에 젖어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저 하루 정도 길어야 일주일을 가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요즘 아이들이야 오랫동안 절실하게 갖고 싶은 것을 꿈꾸어 본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이들이 절실히 원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챙겨 주거나 갖고 싶은 것을 하루 이틀 조르기만 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을 선물의 의미로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어떤 분이 자기 일생을 통해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면서 내 놓은 것이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를 자랑삼아 내어 놓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가장 가난한 친구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이란다. 조개껍질 선물을 만들기 위하여 그 가난한 친구는 바닷가에서 수많은 조개껍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골랐을 것이고 그 하나하나의 조개껍질을 주우면서 자기를 얼마나 생각 했겠느냐는 그의 설명을 듣고는 그가 그 선물을 아끼는 이유를 알 만했다.

선물은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일구어 내는 사랑과 보시(布施)의 산물이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을 가장 포근하게 만들어주며 생명력이 있는 씨앗의 추억으로 가슴에 축척될 것이다.

20여전의 일이다. 적금을 3년 동안 넣어 60만원의 거금을 손에 넣게 되었다. 13평의 연립주택에 살면서도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 돈을 어디에 쓸까? 한 번도 변변히 선물을 못해드린 노모님께 금반지를 해 드릴까 아니면 홀시어머니에 7남매 뒷바라지에 한 번도 자기 자신을 가꾸어 보지 못한 아내에게 다이야 반지라도 끼워 주어야할까. 아이들이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는 컴퓨터를 사줄까? 며칠을 고민했었는데 어느 날 나는 가족 모두와 꽃동네를 향하고 있었다. 꽃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행복이란 만족한 삶이다라는 문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녀님의 안내를 받아 부랑인들이 기거하는 사랑의 집‘, 정신지체아가 살고 있는 환희의 집‘, 돌보아 줄 가족이 없는 노인들이 살고 있는 양로원‘, 심신장애자들이 살고있는 심신장애자 요양원‘, 마지막 임종을 기다리는 분들의 병상까지 둘러본 뒤 꽃동네의 시작인 최귀동 할아버지의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다라는 수녀님의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축복된 자리에 서 있나를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우리 모두를 설레게 했던 60만원의 수표는 꽃동네에 가 있었고 60만원의 수표를 품고 갔던 우리의 가슴엔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후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때때로 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빈손가락을 볼 때마다, 아내의 허전한 목 줄기를 볼 때마다, 아이들의 빈 책상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런데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무렵 우연히 컴퓨터파일을 검색하던 중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는 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우리 아버지는 가난하면서도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가장 멋진 선물을 해 주셨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작은 욕망을 접게 하시고 꽃동네를 통해서 내 가슴에 심어 주신 사랑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그 사랑의 선물로 뜨겁게 가슴이 데워져 있으며 그 데워진 내 가슴은 내 가정, 내가 살아갈 사회를 통해서 뜨겁게 달구어 낼 것이다.’

내 아이의 이 멋진 글을 읽으며 내 선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나 또한 자식한테 받은 이 멋진 글 한 줄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교만과 같은 온갖 것을 버리고 보시하며 살라는 내 생애 최고의 선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것은 불혹을 넘어 이순의 나이에도 혹하며 살고 있는 내 삶을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때때로 질책하는 내 마음의 성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게다.

[연재] 시몬 손중하의 ‘국화꽃 베개'(2)

 [코리안투데이] 어느 시월의 밤하늘과 별빛, 그리고 나(그림: chatGPT) © 임승탁 기자


시월 밤하늘의 별빛이 참으로 곱기도 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예쁘게 살아가느라 너무도 힘든 이에게 푸른 하늘에 풍덩 다이빙하여 별빛하나 건져와 목걸이 만들어 그들의 목에 걸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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