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돌아보면 마치 계절처럼 순환해온 시간이 떠오른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무더운 날들을 건너면 어느새 가을이 찾아오며, 그 끝엔 조용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듯이 내 삶도 그렇게 계절을 따라 흘러왔다. 모든 순간은 처음엔 낯설고 벅찼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졌고, 익숙해진 만큼 이별을 준비해야 했으며, 그렇게 나는 수많은 계절을 지나며 나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삶의 계절은 단 한 번의 직선이 아니라, 되풀이되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원이었다. 비슷한 날을 반복하는 듯 보이지만 매 순간은 결코 똑같지 않았고, 나 역시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 시간을 살아냈다.
어린 시절의 봄은 가능성의 계절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섰으며, 실패도 경험이라 여기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계절은 무게를 품기 시작했고, 책임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여름의 열기가 찾아왔다. 땀과 눈물이 섞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지키고 싶은 것을 발견했고,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견뎌야 할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가을이 왔다. 수확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동안 지나온 계절들이 주는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 더 깊었다. 사람의 마음도 가을처럼 차분해지고, 한껏 여물어가는 감정들 속에서 나는 나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나는 겨울의 문턱 앞에 서 있다. 추위는 때론 고요함을 선물하고, 멈춤은 성찰의 시간을 허락한다. 누군가는 겨울을 죽음의 비유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삶의 가장 지혜로운 계절이라 느낀다. 더 이상 바쁘게 달릴 필요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애쓸 이유도 없이, 조용히 내 안의 온도를 확인하며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시간.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겨울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나온 모든 계절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도 나에게 의미 있고 충분하다.
삶의 계절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계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어떤 이는 봄을 놓치고 여름에 지쳐버리며, 또 어떤 이는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겨울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계절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봄은 설레고, 여름은 치열하며, 가을은 울컥하고, 겨울은 고요하다. 그것이 인생이다. 매 순간을 지나면서 우리는 단단해지고, 계절마다 조금씩 새로운 나로 깨어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반드시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깊은 성숙이다.
나는 이제 나의 인생이 한 편의 사계절과도 같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계절 하나하나가 모여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살아 있는 시간의 일부라는 것을 느낀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나는 같은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안에서 나는 성장했고, 때로는 아팠고, 무엇보다 살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나의 인생은 계절처럼 흐르지만, 그 모든 흐름이 나를 완성해주는 과정이었다고. 지금 내가 선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계절인지, 가슴 깊이 새기며 하루를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