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어쩌면 나만의 연대기를 다시 써 내려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록이 아닌, 세상의 기준에 맞춘 이력이 아닌, 내가 나로서 살아낸 시간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다시 써보는 일, 그건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여정이다. 우리는 때로 지난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고 싶어 하지만, 그 시간들조차 지금의 나를 이루는 본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삶은 다른 빛깔로 다가온다. 내가 겪은 실패, 내가 품었던 후회, 내가 놓쳤던 기회마저도 의미가 있었고, 지금의 내가 그것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에 연대기를 다시 쓰는 일은 회복의 시작이 된다.
어릴 적에는 미래만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렸고, 청년기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느라 지금 내 마음을 돌아볼 틈이 없었으며, 중년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걸어온 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과거를 돌이켜보는 일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안에 내가 잃었던 나 자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나간 시간 속에는 말하지 못했던 감정과 미처 풀지 못한 질문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적어보는 이 일이야말로 내 삶을 다시 품는 따뜻한 일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쓰는 연대기였기에 나는 더 진솔해질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아팠던 시간은 돌이켜보면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시간이었다. 겉으로는 무너져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고요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시간들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시절을 지우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 시간을 마음 깊이 끌어안고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나의 연대기에는 부끄러운 순간도 있고, 눈물 젖은 밤도 있지만, 그 모두가 빠질 수 없는 소중한 문장들이며, 지금의 나를 증명하는 단서들이다. 나는 내 삶의 모든 장면을 고르고 골라 남길 수는 없지만, 최소한 스스로에게는 그 장면들을 왜 살아냈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는 연대기의 각 장면을 평가하거나 순위를 매기기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들여다보려 한다. 어떤 때는 너무 지쳐서 하루를 견디는 것조차 벅찼지만,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삶은 결코 완벽하진 않지만, 온전하고 정직하다. 나는 나의 시간들을 다시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고, 그 시간 속에서 진심을 다했던 나를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다시 쓴 연대기는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자,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에게 가장 치유적인 작업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또 한 줄의 연대기를 써 내려간다. 이 글을 적는 지금 이 순간도 내 삶의 한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은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나의 삶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기록하려는 이 진심이 결국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걸 나는 이제 분명히 안다. 내 삶의 연대기를 다시 쓰는 이 과정이야말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한 가장 따뜻한 준비이자, 나를 위한 조용한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