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는 괜히 해서!’, 글로벌 OTT를 정조준하다…K-로코 서사의 새 축 열리나

 

SBS 수목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극본 하윤아·태경민, 연출 김재현·김현우)가 국내 안방극장을 넘어, 글로벌 OTT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코리안투데이] SBS 수목 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가 2주 연속 전 세계 넷플릭스 이용자가 가장 많이 본 비영어 시리즈물로 올라서며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사진제공: fnnews) ⓒ 박찬두 기자

 

로맨틱 코미디, 이른바 로코라는 오래된 장르의 틀을 빌리면서도, 이 작품은 익숙함을 안심의 장치로 삼고 그 안쪽에서 미세하게 변주를 더해간다. 그 결과는 숫자로도, 화제로도 선명하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 2주 연속 글로벌 1. 한 편의 드라마가 어느새 K-로맨틱 코미디, K-로코의 새로운 계보를 예고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야기의 골격만 놓고 보면 설정은 낯설지 않다. ‘키스는 괜히 해서!’는 생계를 위해 애엄마로 위장 취업한 싱글 여성(안은진 분), 그 진실을 모른 채 서서히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까칠한 팀장(장기용 분)쌍방 속앓이 로맨스를 그린다.

 

안방극장과 OTT를 오가며 무수히 변주되어온 사내 로맨스정체 숨기기라는 두 축이 다시 한번 호출된다. 그러나 작품이 환기하는 것은 클리셰(특정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익숙한 설정·전개·대사·연출 등)의 피로감이 아니라, 클리셰가 세대와 시대를 건너며 어떻게 새롭게 감각될 수 있는가에 대한 작은 실험이다.

 

제작진은 서사의 구조를 낡은 공식에 기대는 대신,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의 감정선이 동시에 호흡하도록 리듬을 조율한다. ‘로코 최적화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배우들의 호흡은 장면마다 정확한 온도를 만들어낸다.

 

대사와 대사의 틈, 오해와 진실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카메라는 인물의 표정과 침묵을 오래 붙들고, 시청자는 그 틈에서 저마다의 경험과 감정을 덧씌우게 된다. 익숙한 장르 위에 쌓인 이 미세한 뉘앙스의 조정이, 바로 익숙함 속의 신선함이라는 역설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데이터는 이 감각의 파급력을 객관화한다. 지난 4일 방영된 8회차는 수도권 시청률 7.1%, 순간 최고 8.5%(닐슨 기준)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동시간대 전 채널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더 이상 입소문의 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대중적 선택의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공식 집계(투둠 Tudum 기준)에 따르면, ‘키스는 괜히 해서!’1일부터 7일까지 약 480만 시청 수를 기록하며 비영어권 TV 부문 글로벌 1위 자리를 지켰다. TV 채널과 OTT라는 서로 다른 플랫폼을 가로지르는 일종의 이중 점령이다.

 

국내 언론은 이 작품을 ‘K-로맨스 신흥 강자라는 표현으로 부르며, 흥행 곡선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특히 주인공들의 복잡하게 얽힌 진실과 약혼 관계가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지점이 주목된다.

 

단순한 알콩달콩 로맨스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서로에게 숨기고 싶은 과거와 지금의 선택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평가다. 시청자는 인물들의 선택에 손쉽게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각자의 생존과 감정이 겹쳐진 모호한 중간지대를 함께 걸어가게 된다.

 

해외 언론의 시선은 조금 더 먼 곳을 겨냥한다. 여러 해외 매체들은 키스는 괜히 해서!’를 비롯한 K-드라마의 흥행을 두고, “언어의 장벽(subtitle barrier)을 넘어서는 공감의 힘을 반복해 언급한다. 자막은 분명 스크린 위에 선명한 경계선처럼 걸리지만, 그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결국 인물의 감정과 서사의 방향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유력 매체 <타임>K-팝 애니메이션의 성공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 콘텐츠 전반이 이미 글로벌 문화 수출품의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탔다고 분석한다. 음악, 드라마, 애니메이션이라는 서로 다른 형식들이 결국 하나의 문화적 이미지를 공유하며, 한국발 콘텐츠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K-드라마의 성공 비결을,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자아를 탐색하는 현대적 서사에서 찾는다. 한때 가족’, ‘희생이 중심에 놓였던 서사는, 이제 자신의 욕망과 감정,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려는 인물을 전면으로 호출한다.

 

키스는 괜히 해서!’ 역시 위장 취업이라는 설정을 통해, 생존과 사랑, 자존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에 뛰어난 영상미, 치밀한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구도와 배치), 안정된 연출과 음악까지 더해져, 작품은 가볍게 웃고 끝나는 로코가 아니라, 시청자의 마음에 오래 잔상으로 남는 감정의 조각들을 남긴다.

 

이 드라마의 성과는 단일 작품의 성공을 넘어, K-콘텐츠 산업 전체의 지형도와도 연결된다. ‘키스는 괜히 해서!’2025K-콘텐츠 시장의 활기를 상징하는 청신호라면,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2026년으로 옮겨간다.

 

전문가들은 2026년을 한국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약 25억 달러(약 수조 원대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가운데, 내년은 이 투자 주기의 결과를 평가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성적표에 따라 향후 투자 규모와 방향, K-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다시 한번 조정될 것이다. ‘키스는 괜히 해서!’ 같은 작품의 성공은 이 지점에서 상징성을 갖는다.

 

한때 한국 드라마는 가성비 좋은 콘텐츠’,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높은 시청 몰입을 이끌어내는 효율적 상품으로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K-로맨스와 스릴러, 장르물과 사극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K-드라마는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플랫폼 편성 전략의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로맨스 장르는 국경과 언어를 가장 쉽게 넘나드는 정서적 통로라는 점에서, 한국 콘텐츠가 가진 서사력과 연기력, 제작 완성도를 세계 시장에 증명하는 일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키스는 괜히 해서!’는 제목부터 장난스러운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생존, 욕망과 윤리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숨어 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 질문이 던져지는 방식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2026, 한국 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할 때, 이 드라마는 아마도 그 변곡점의 전조처럼 회자될 것이다. 언젠가 K-로코의 계보를 더듬어보는 날이 온다면, ‘키스는 괜히 해서!’라는 제목은 분명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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