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

2010년 공익광고에 나왔던 내용이다. 이 광고를 TV에서 처음 봤을 때 머리를 한 방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이 광고가 나올 무렵 나의 아이들이 중학생이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성적보다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갖도록 해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내가 교사인데, 그래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성적이 나와야 창피하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곤 했다. 내 마음 한 구석에 학부모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순전히 나의 체면 때문이었다. 동료 교사의 아이들이 반에서, 전교에서 앞을 다투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학원을 보내서 아이들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하면 그 학원에 보내고 싶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들의 수학공부를 위해 유명한 학원에 보냈다. 학원에서 테스트를 받은 후 아이들 실력에 맞는 반으로 갔다. 학원비가 비쌌다. 학원비가 비싸니 조금이라도 학원에서 잘 배우기를 바랬다.

행복한 엄마아빠 4일차,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학원을 빠진다고 하면 그렇게 아까웠다. 생활비를 쪼개고 아끼며 모은 돈으로 학원을 보냈다. 그러나 나의 아이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원을 가기 싫어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보냈다. 결국 몇 달 다니다 그만두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귀한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학원 가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집으로 오는 시간, 참 아까운 시간을 그냥 허비했다. 얻은 것도 없었던 학원 생활이었다. 열심히 벌어서 학원의 관리비만 대준 꼴이었다.

그런 식으로 허비한 돈이 많다. 차라리 그 학원비로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더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주었더라면 덜 아까웠을텐데. 어느 부모나 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이들에게 공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자존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학부모의 마음으로 바뀌곤 했다.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한동안 23.8%의 최고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이다. 대한민국 부모와 학부모라면 모두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스카이캐슬’이라는 초호화 주택단지를 만들어 상위 0.1%의 사람들이 모여 살게 했다. 이곳에 사는 부모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다. 그 일념으로 시간과 돈, 인맥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시전쟁을 치른다. ‘스카이캐슬’ 안에서 현 사회의 어두운 실상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부모가 아닌 학부모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것이다.

영재의 부모는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폭언, 구타, 감금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 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영재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다. 입시코디네이터인 김주영‘쓰앵’님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영재는 드디어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다. 그러나 합격증이 나오자마자 서울대 합격증을 두고 그대로 가출했다. 영재의 엄마는 그 충격으로 인해 자살하고 만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다행히도 영재의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비록 드라마지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가 딴 세상 이야기 같지 않았다. 영재 집안과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영재의 부모는 학부모이다. 오로지 자신의 체면을 위해 자식의 출세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스카이캐슬》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입시코디네이터인 김주영‘쓰앵’이 학생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사용한 방법들이다. 유명 강사진을 동원하여 과목별 코치, 공부방의 인테리어, 학생부 항목 관리, 친구 관리, 학생의 심리상태 통제, 시험지 유출 등 모든 합법과 편법을 사용했다. 명문대 합격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댓가인 코디네이터비로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큰 돈을 받았다. 그렇지만 돈이 있다고 누구나 그녀를 고용할 수 없었다. 서류와 면접을 통해 그녀에게 간택되어야만 자녀 관리를 맡길 수 있었다. 도리어 학부모들은 김주영‘쓰앵’을 상전처럼 떠받든다.

차가운 가장 차민혁은 무척 가부장적인 가장이다. 흙수저인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아빠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피라미드 최상위 계층이 되어 살라’고 강요했다. 그의 딸은 차민혁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하버드에 입학했다는 거짓말을 하며 살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엄마가 아빠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의 용기 덕분에 쌍둥이 아들과 딸은 정상적인 삶을 찾아갔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곽미향. 그녀는 전직 교사 출신 전업주부다. 어려서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모습으로 남편의 내조도 완벽하게 했다. 두 딸의 자녀교육도 완벽하게 하는 여자로 ‘스카이캐슬’ 안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마치 헬리콥터처럼 자녀 주변을 빙빙 돌며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헬리콥터 맘이다. 아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이 없다. 자녀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다녔다. 심지어는 아이가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도 주인과 거래했다. 아이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이니 그냥 계속 훔치게 두라고. 그러면서 자녀들의 모든 생활을 아이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통제하고 간섭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자기 영혼을 악마에게도 갖다 바칠 학부모의 모습이다.

‘스카이캐슬’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드라마지만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했다. 자녀교육을 하는 학부모의 실체를 풍자하며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를 보면서 그렇게 힘 있는 부모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과연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까? 부모라면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학부모가 되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최상위층의 권위를 누리기 위해서 공부가 답이라고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소위 잘 사는 동네의 건물마다 학원들이 넘쳐난다. 불황이 없다. 조금 유명해지면 학원비는 부르는게 값이다. 수많은 학원 차들이 하교길의 아이들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실어나른다. 하루에도 서너군데 학원을 다니느라 아이들은 김밥 한 줄이나 컵밥과 컵라면에 의지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이들이 학원을 떠돌다 집에 오면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다. 심지어는 밤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과도하게 아이를 밀어붙이다가 아이가 심각하게 망가지고 나서야 후회하고 반성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중학교 올라가서 마음을 놓아버린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령이 점차 낮아졌다. 초등학교에서도 과도한 학부모의 이기심으로 인해 무기력에 빠져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지, 누구를 위해 공부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박대진의《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다》에 엄마들도 모르게 진행되는 ‘최초의 계약’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그저 아이답게 건강하게 뛰어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절대 사교육은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앞서 나가는 또래 다른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들은 사교육의 도움 없이 독서와 체험학습만으로 아이를 영재로 키우기도 한다는데, 최소 영재는 아니더라도 뒤처지지 않게 키워야할 것 아닌가. “내가 무슨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고한 교육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한 고집 때문에 아이를 뒤처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엄마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수많은 고민을 하며 버티던 엄마들도 결국 사교육의 문을 두드린다.”

부모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1학년에서 한글을 배운다고 하지만 아이의 친구들이 책을 줄줄 읽고, 한글을 자유롭게 쓰는 모습을 보면 불안해진다. 앞서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학부모가 된다. 그러나 수년간 1학년을 담임을 하며 느낀점은 놀랍게도 아이들은 믿어주면 잘 해낸다는 것이다. 한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기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부모가 조바심내지 않고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고, 자존감을 갖게 하면 아이들은 거뜬히 해낸다. “내 자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를 실천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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