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10시 무렵, 세계 장애인의 날 일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한 국회의원에게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의원님, 지금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TV를 켜보세요.”
![]() [코리안투데이] 서미화 국회의원 © 김현수 기자 |
수화기 너머의 다급한 목소리에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곧바로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했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텔레비전의 반복되는 속보 자막을 ‘소리’로 확인한 뒤, 옷을 다시 갈아입고 국회로 향할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국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본회의장에 들어가 계엄 해제 의결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었죠.”
시각장애로 인해 홀로 이동이 어려운 그는 보좌관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고, 밤 10시 50분경 집 앞에서 보좌관과 합류했다. “손을 놓지 마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은 국회로 전력질주했다.
하지만 국회 정문 앞은 이미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경찰 차량이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고, 시민과 경찰이 뒤엉켜 거친 고성과 항의가 오가는 아수라장이었다. 보좌관은 “국회의원입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외치며 몸으로 길을 열었고, 그 틈을 타 서 의원은 정문 앞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만져본 철문에서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겠다는’ 촉감을 인지했다. “창살이 동그랗게 잡히더군요. 발을 끼우면 오를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서 의원은 망설임 없이 철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꼭대기 부근에 이르렀을 때, 안쪽에서 한 여성 경찰이 “뛰어내리세요, 제가 받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서 의원은 그렇게 국회 담 안으로 착지했다. 안쪽에는 이미 임미애 의원이 먼저 넘어와 있었고, 그는 서 의원의 손을 잡고 본회의장까지 함께 뛰었다.
본회의장 안은 텅 비다시피 한 상태였다. “과연 150명이 제때 모여 계엄 해제를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밀려왔고, 그는 의장석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의장석 앞으로 이동했다. 당시 의사봉을 두고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우발 상황을 막기 위한 판단이었다.
의장 입장 후에도 바로 의결이 진행되지 않자 서 의원은 뒷좌석에서 “지금 당장 상정해야 한다”고 고성을 질렀다. 그는 “만약 계엄군이 들이닥친다면 시각장애인인 내가 가장 먼저 잡힐 것이라는 공포가 밀려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계엄 해제가 가결된 뒤, 그는 국회 주변을 둘러보다 또 다른 장면과 마주했다. 국회 6개 출입문 앞에 시민들, 특히 여대생들이 은박지를 깔고 앉아 노트북으로 시험공부를 하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국회를 지키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도 속속 국회 앞으로 모였다.
서 의원은 “그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진짜 용기 있는 시민들이었다”고 말했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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