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독재와 ‘다름의 윤리’

알고리즘의 독재와 ‘다름의 윤리’
✍️ 기자: 임승탁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나와 비슷한 생각만 흘러들어온다. 내가 좋아한 음악과 닮은 노래, 내가 공감한 기사와 유사한 뉴스, 내가 분노했던 방향과 같은 분노의 목소리.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편하다. 그러나 그 편안함이 불길하다.

 

 [코리안투데이] 챗GPT를 이용한 AI 이미지 © 임승탁 기자

오늘의 알고리즘은 단순히 ‘좋아요’를 계산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인식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이 기술의 본질은 명료하다. 다름을 줄이고 같음을 증폭시키는 것.

히틀러가 인종의 동일성을, 스탈린이 사상의 동일성을 강요했다면, 요즘의 사회는 ‘취향의 동일성’을 강요한다. 다름의 소거는 폭력이 아니라 ‘추천’의 이름으로, 검열이 아니라 ‘최적화’의 이름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생각의 다양성은 점점 사라지고 사회는 조용해진다.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라 무감각의 징후다.

 

사람들이 불편한 대화와 논쟁을 피할수록 인간은 조금씩 단순해진다. 다양성은 소모적이라며 외면되고, 복잡함은 귀찮음의 대상이 된다. 그때 시작되는 것은 무혈(無血)의 독재다. 이 독재는 폭력이 없다. 우리는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저 피로하지 않기 위해, 다름을 귀찮아하기 위해, 스스로 같은 것만 클릭하고 공유한다. 그 반복된 선택이 우리 안의 ‘다름’을 천천히 죽인다.

 

히틀러의 강제수용소는 사라졌지만, 오늘의 사회는 사고의 수용소 속에 갇혀 있다. 역사는 늘 경고해왔다.

모든 동일성의 열망은 폭력으로 귀결되었고, 그 폭력은 언제나 ‘질서’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알고리즘의 시대에도 그 질서는 여전하다. 단지, 그것이 ‘편리함’이라는 옷을 입었을 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의 개혁이 아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감각의 윤리, 즉, 다름을 견디는 능력이다.

 

진정한 자유는 ‘정확한 정보’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다른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용기에서 비롯된다. 

“다름을 거부하는 기술은 결국 인간을 재현하지 못한다.”
인간은 불일치 속에서만 진화한다. 알고리즘의 시대, 진짜 자유란 모두가 같은 것을 보는 세상에서 끝까지 다른 것을 바라보는 용기를 잃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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