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바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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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Korean Today LA

 

조선 초기, 유관과 그의 아들 유계문의 이야기는 효와 가족애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전통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이 일화는 효도의 의미와 부모 자식 간의 깊은 정을 보여주는 한편, 그 속에 담긴 희생과 배려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바꾼 아버지

 [코리안투데이하정 유관의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우산각 어린이공원(사진제공구르미ⓒ 박찬두 기자

 

하정 유관에게는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장안에서 이름난 효자로 성장했다.

 

아침저녁으로, 그리고 집을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꼭 아버지에게 문안인사를 드렸으며,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아버지가 주무시는 온돌 방바닥에 찬 기운이 없는지 손으로 확인하곤 했다. 그야말로 효심이 깊은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조선 초기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직을 맡게 되었고,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행실이 바르고 언행이 점잖아 아버지 유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세종 8(1426), 그 아들은 충청도 관찰사로 발령받았다. 당시 충청도는 지금의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를 합친 넓은 지역으로, 관찰사라는 직책은 오늘날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자리였다.

 

하지만 아들 유계문은 한사코 관찰사직을 사양하며 발령지로 가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 유관이 아들을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임금께서 주시는 영광스러운 벼슬인 관찰사를 마다하느냐? 관찰사란 직책은 매우 중한 자리이고, 아무나 하고 싶다고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란 것쯤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러자 아들은 죄송스럽다는 말만 반복했다.

 

죄송하다 말하기 전에 네가 관찰사 직책을 맡을 수 없는 이유부터 말해 보아라.“

 

아버지가 다그치자 아들 유계문은 입을 열었다.

 

저는 다만 불효를 저지르는 일을 삼가고자 할 뿐입니다.“

 

아니, 뭐라고? 관찰사를 맡는 것이 어째서 불효가 된다는 말이냐? 나는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사실대로 말해 보아라.“

 

온화한 성품의 유관도 화를 낼 지경이었다. 그제서야 아들이 대답했다.

 

저는 아버님 존함을 밟는 관직만큼은 맡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습니다. 그런 불효를 어찌 자식으로서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내 이름을 밟는 직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관찰사란 직명에 아버님 함자인 볼 관() 자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어찌 제가 감히 존경스러운 아버님의 함자를 쓰는 직책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마치 아버님 이름을 딛고 감투를 쓰는 것 같아 그 벼슬만은 사양하는 것입니다.“

 

이 미련한 자식아. 그 사표는 즉시 반려다. 대신 내가 이름을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

 

“…“

 

볼 관() 자를 즉시 너그러울 관() 자로 바꾸겠다. 자식이 잘된다면 아비가 이름을 바꾼들 무슨 흉이 되겠느냐? 내 이름은 오늘부터 유관(柳寬)이다.“

 

이렇게 하여 유관은 자식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이름자를 중년에 들어 바꾸었다.

  

 [코리안투데이하정 유관의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우산각 어린이공원(사진제공구르미ⓒ 박찬두 기자

  

이는 단순히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헌신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희생을 보여준다.

 

실제로 유관의 성품과 처신을 살펴보면, 날카롭게 사물을 본다는 의미의 볼 관()’ 자보다 너그럽고 인자함을 뜻하는 너그러울 관()’ 자가 그의 인격을 더 잘 표현한 이름이었다고 여겨진다.

  

이 이야기는 효심과 가족애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준다. 자식은 부모의 뜻을 존중하고, 부모는 자식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희생한다. 이는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본질이며,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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