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압축판, ‘킹메이커’ 이해찬 수석부의장 베트남서 영면이해찬 전 국무총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가 2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40여 년간 민주당 계열 정당의 집권사를 설계해온 ‘최고의 전략가’이자 4명의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현대사의 큰 별이 졌습니다.

1. 베트남 출장 중 급작스러운 별세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 증상으로 쓰러져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25일 오후 2시 48분 끝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운구 및 장례: 고인의 시신은 27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운구되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될 예정입니다.
장례 절차: 현재 정부는 국가장 거행을 검토 중이며, 이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최종 결정됩니다.
2.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4인의 대통령과 함께한 40년이 전 총리의 정치 인생은 민주당 집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김대중과 이해찬: 정계 입문과 교육 개혁
1988년 DJ에 의해 발탁된 그는 13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5공 청문회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고, DJ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내며 ‘이해찬 세대’라는 용어를 낳는 등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노무현과 이해찬: ‘실세’를 넘어선 ‘책임 총리’
노무현 정부 시절 그는 국정 전반을 장악한 책임 총리로 통했습니다. 야당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버럭 해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나, 이는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문재인과 이해찬: 180석 압승의 설계자
2018년 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시스템 공천’을 도입해 21대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전무후무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 정당의 기틀을 닦아 민주당의 현대적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했습니다.
이재명과 이해찬: 마지막 프로젝트와 정치적 멘토이 전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을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옹호했고, 자신의 조직인 ‘광장’을 통해 ‘이재명 대세론’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주었습니다.
3. 왜 이재명을 선택했나? “인생 역경과 권력 의지”
이 전 총리는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정치권에서 이 후보처럼 소년공 출신의 인생 역경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권력 의지’를 높게 평가했으며,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낼 인물 곁에서 항상 승리를 설계해왔습니다.

4. 주요 약력 및 유족출생: 1952년 충남 청양
학력: 용산고 졸업,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경력: 13~17·19~20대 국회의원(7선), 교육부 장관, 제36대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
유족: 부인 김정옥 씨, 딸 현주 씨
5. 이재명 대통령의 애도 메시지이재명 대통령은 25일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습니다. 이어 “고인이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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