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이터는 과거에 살고, 맥락은 현재에 산다
일본에서 시작된 이 표현은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KY(쿠키 요메나이, 空気読めない)’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죠. “공기 못 읽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점은, 우리 모두가 공기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오늘 분위기’를 압니다. 식탁에 앉자마자 ‘오늘 집안 공기’를 느낍니다.
이 능력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금’을 읽는 능력입니다.
AI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문제입니다.
왜일까요?
![]() [코리안투데이] AI와 인간은 시간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봅니다. © 이선영 칼럼니스트 |
시간의 방향이 다르다
AI와 인간은 시간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봅니다.
AI는 뒤를 봅니다. 과거의 데이터, 이미 일어난 일, 기록된 사실. AI에게 세상은 거대한 박물관입니다. 완벽하게 정리되고, 라벨이 붙고, 분류된 과거의 전시장입니다.
인간은 앞을 봅니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을 봅니다. 이 순간, 바로 이 자리,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무언가. 아직 데이터가 되기 전의 것들, 기록되기 전에 흐르는 것들.
데이터는 과거 시제입니다. “~였다”의 세계입니다.
맥락은 현재 시제입니다. “~이다”의 세계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AI와 인간을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0.1초의 간격상사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
똑같은 질문입니다.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던진 질문.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왜 다를까요? 30분 전 CEO의 구조조정 메일 때문입니다. 아직 회의록에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회의실 공기는 이미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그 차이를 압니다. 0.1초 만에.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에.
AI는 모릅니다. 회의가 끝나고, 회의록이 작성되고, 데이터가 입력되고, 다음 학습 주기가 와야 비로소 “아, 그 시기에 구조조정이 있었구나”를 압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까요.
데이터와 경험의 차이생각해보세요.
- AI는 10억 건의 연애 상담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가슴이 뛰어본 적이 없습니다.
- AI는 수백만 개의 음식 리뷰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배가 고팠던 적이 없습니다.
- AI는 모든 날씨 패턴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비를 맞으며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차이가 보이시나요?
데이터는 ‘알고 있음’입니다. 맥락은 ‘겪고 있음’입니다.
여러분이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단순히 ‘과거에 좋아했던 음식’ 데이터만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기분, 날씨, 동행인, 어제 먹은 것, 내일 약속, 지갑 상황, 심지어 지금 이 식당의 조명과 음악까지… 수십 가지 ‘현재 진행형’ 요소들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이것이 맥락입니다. 데이터화되기 전의 것들. 기록되기에는 너무 미세하고, 순간적이고, 개인적인 것들.
타임스탬프가 없는 순간들지금 이 순간을 생각해보세요.
AI에게 지금은 “2026년 1월 31일 오후 4시 30분”이라는 타임스탬프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새해 목표를 세운 지 벌써 한달. 흔들리는 다짐.
- 아직 남아있는 새해의 설렘겨울 오후의 짧은 해. 곧 어두워질 것 같은 조급함.
똑같은 “오후 4시 30분”이라도:
- 월요일과 금요일은 다릅니다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은 다릅니다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다릅니다급한 일이 있을 때와 여유로울 때는 다릅니다
AI는 이 모든 변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날씨 데이터, 요일 정보, 개인 일정, 심지어 바이오리듬까지. 하지만 그 변수들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얽혀서 ‘의미’를 만드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의자에 앉은 자세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변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AI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아무리 데이터가 많아져도, 아무리 알고리즘이 정교해져도, AI는 ‘지금, 여기’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여러분은 ‘단어’만 듣지 않습니다. 목소리 톤의 미묘한 변화, 표정의 작은 움직임, 문장 사이의 짧은 침묵,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흐르는 어떤 것을 읽어냅니다.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여러분은 0.1초 만에 파악합니다. 누가 피곤한지, 누가 긴장하고 있는지, 누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지. 이건 추론이 아닙니다. 계산이 아닙니다. 감지입니다.
AI를 제대로 쓰는 법그렇다면 AI는 쓸모없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AI에게 잘못된 것을 물어왔습니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해?” ← 이건 AI가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 ← 이건 AI가 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판단합니다.
- “그 과거의 상황과 지금은 뭐가 다르지?”
- “그 차이가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지금 이 순간의 공기를 고려하면, 무엇을 조정해야 할까?”
데이터는 재료입니다. 맥락은 요리입니다.
AI는 훌륭한 재료 창고지기입니다. 어떤 재료가 있는지, 과거에 어떤 조합이 성공했는지 완벽하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이 식탁에서, 이 사람들과, 이 분위기에서 무엇을 요리할지는…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마치며: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AI가 과거의 데이터로 작동한다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본질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AI를 ‘현재를 아는 존재’로 착각할 때 생깁니다. AI는 현재를 모릅니다. 원리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압니다. 여러분은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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