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아닌 현재의 인권 문제” 집단수용시설 장애여성 강제불임 논란, 국회서 재발방지 촉구

장애여성의 몸을 통제해온 구조적 폭력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경고가 국회에서 터져 나왔다. 집단수용시설을 중심으로 자행돼 온 장애여성 강제불임·강제피임 시술 문제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문제 제기다. 시민사회와 국회의원들은 국가 차원의 전면 실태조사와 책임 인정, 그리고 탈시설을 포함한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코리안투데이] 강제불임수술진상규명대책위원회와 김예지·서미화 의원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사진=김예지의원실) © 변아롱 기자

 

강제불임수술진상규명대책위원회와 김예지, 서미화 의원은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수용시설과 복지시설, 정신의료기관 등에서 발생한 장애여성 대상 강제불임·강제피임 시술과 자녀 분리 사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은 해당 문제가 개인 일탈이나 과거의 오류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가 만들어낸 반복적 인권침해라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던 역사부터 짚었다. 과거 모자보건법 제9조는 ‘유전성 질환’ 등을 이유로 불임수술을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이 조항은 집단수용시설에서 장애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근거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해당 조항은 1999년 삭제됐지만, 그 이후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나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 배·보상 논의는 사실상 전무했다는 것이 대책위의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침해가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책위는 최근 전남의 한 노숙인 시설에서 발생한 장애여성 강제피임 시술과 강제 자녀 입양 사건을 언급하며, “강제불임과 재생산 통제는 여전히 폐쇄적인 시설 안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애인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배제가 제도적으로 방치돼 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김예지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시설 수용 중이거나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장애여성에 대한 강제피임 시술 실태를 질의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당시 시설 전수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9년 법 조항 삭제 이후 27년이 흘렀지만,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며 그 사이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해외 사례도 언급됐다. 일본은 과거 ‘우생보호법’에 근거해 강제불임수술을 시행한 사실이 확인되자, 국회와 정부 차원의 전면 실태조사와 배·보상 절차를 진행해 왔다. 특히 지난해 7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우생보호법에 따라 강제불임수술을 받은 피해자 12명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책위는 이를 두고 “한국 사회 역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를 향해 주거형 복지시설과 정신병원 등에서 발생한 강제불임·강제피임 시술에 대한 전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긴급 탈시설 및 자립 지원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국회에는 장기간 계류 중인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과 더불어, 모든 사람의 성·재생산 자유와 권리를 명확히 보장하는 별도의 법적 근거 마련을 촉구했다.

 

김예지 의원은 “직권 조사가 어렵다면 최소한 피해자들이 상담을 받고, 진실·화해 절차나 국가 배·보상 제도를 안내받을 수 있는 공식 창구라도 마련해야 한다”며 “국가는 보호라는 명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서미화 의원 역시 “시설 내 강제불임과 강제피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삶과 몸을 통제해 온 구조적 인권침해”라며 “이제는 과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 인식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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