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같은 꽃, 한 줌의 한이 된 나무 — 이팝나무 이야

 

5월이면 마을 어귀에, 학교 담장 옆에, 절집 마당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이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눈이 쌓인 것 같고, 가까이 다가서면 소복이 담은 쌀밥처럼 포근하다. 이팝나무. 이름부터 어딘가 애틋하다. 이밥, 이팝, 쌀밥… 굶주림이 일상이던 시절을 견뎌낸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겠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 아주 가난한 마을에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가 있었다. 굶주린 채 세상을 떠난 그 아이는 한이 되어 나무로 다시 태어났고, 봄이 되면 하얀 쌀밥 같은 꽃을 피워 올렸다. 그 나무가 바로 이팝나무란다. 진짜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이야기”라며 웃으셨다.

 

 [코리안투데이]  아파트 단지 옆에서 만난 옛날이야기 한 그루  © 이명애 기자

 

물론 학자들은 말한다. ‘이팝’은 순우리말 ‘이밥(쌀밥)’에서 유래했고, 꽃이 쌀밥처럼 보여 붙은 이름일 뿐이라고. 맞다. 과학적이고 정확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름 하나에 전해지는 전설과 정서는 그렇게 간단히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배고픔을 견디며 나무 한 그루에 생의 의미를 담아냈던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이팝나무 앞에 서면 잠시 멈춰 서게 되는 이유 아닐까.

 

 [코리안투데이]  아파트 단지 옆에서 만난 옛날이야기 한 그루  © 이명애 기자

 

오늘 찍은 이팝나무는 아파트 단지 앞 회색 건물 벽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이팝나무는 더더욱 하얗게, 더더욱 따뜻하게 보였다. 삭막한 도시 풍경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어느 이름 없는 아이를 위해 여전히 피어나고 있었다.

 

바람에 꽃잎이 날린다. 꽃인지 쌀알인지 헷갈릴 만큼 소담하고 순한 모습이다. 어느 봄날 굶주린 아이가 남긴 한 줌의 그리움이, 지금은 이렇게도 따뜻한 풍경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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