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경쟁력은 낮의 풍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해가 진 이후에도 사람들이 머물고 걷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도시의 품격을 가른다. 서울 서남권 대표 수변 공간인 안양천이 최근 ‘밤이 더 아름다운 장소’로 변신하며, 양천구의 도시 경관 전략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 [코리안투데이] LED 디자인폴 레인보우 설치 모습(사진=양천구청) © 변아롱 기자 |
양천구는 신정교에서 오금교까지 약 500m에 이르는 안양천 제방 산책로 구간에 야간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안전성과 감성을 동시에 강화한 ‘야간경관 개선사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으로 안양천은 단순한 운동·산책 공간을 넘어, 야간에도 머물고 싶은 수변 명소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양천은 양천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핵심 자연 자산이다. 낮 시간대에는 러닝, 자전거,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로 붐비지만, 그동안 야간에는 조도 부족과 단조로운 경관으로 이용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양천구는 2023년 신정교 하부 경관조명 설치를 시작으로 안양천 야간경관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이번 사업은 그 두 번째 결과물이다.
이번에 정비된 구간은 단순히 ‘밝히는 조명’이 아니라, 공간의 성격과 자연환경을 고려한 ‘설계된 빛’이 핵심이다. 산책로 초입에는 LED 보안등을 설치해 바닥면을 고르게 밝히고 전체 조도를 보강함으로써, 야간 보행 시 시야 확보와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강화했다. 이는 범죄 예방과 사고 방지 측면에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조치다.
중앙 구간은 이 사업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왕벚나무가 양쪽으로 식재된 이 구간에는 높이 2m의 폴 조명이 설치됐다. 수목을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투광 방식이 아니라, 보행자 눈높이에 맞춘 조명 배치로 나무의 입체감과 공간의 깊이를 자연스럽게 살렸다. 조명 색온도는 4,000K의 중간 밝기 백색으로 설정해 눈부심을 줄이면서도 쾌적한 야간 산책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이 구간은 계절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봄에는 벚꽃 터널, 가을에는 단풍길로 변하는 특성을 살려, RGBW(적·녹·청·백) 색상의 투광 조명을 계절별로 연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계절마다 다른 빛의 분위기를 입히는 방식은, 같은 공간을 반복 이용하는 주민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신정교 하부 구간에는 보다 역동적인 디자인 요소가 적용됐다. ㄱ자형 LED 디자인 폴을 설치해, 7가지 색상이 순차적으로 변하는 ‘레인보우 연출’과 파노라마 형태의 패턴 조명이 구현되도록 했다. 단조로운 교량 하부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함으로써,어둡고 지나치기만 하던 공간을 시각적 포인트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야간경관 조명은 스마트 시스템과도 연동된다. 계절별 일몰 시각에 맞춰 자동으로 점·소등되며, 시간대와 환경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된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면서도 이용자 편의는 높이는 방식으로, 최근 도시 경관 조성에서 강조되는 지속가능성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안양천 야간경관 개선은 단순한 미관 사업을 넘어, 도시 생활 방식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저녁 시간대 야외 활동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안전하고 감성적인 야간 보행 공간은 주민 삶의 질과 직결된다. 특히 주거 밀집 지역인 양천구에서는 집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야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의 가치가 크다.
도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변 공간의 야간 활용도가 도시 브랜드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낮에만 소비되는 하천이 아니라, 밤에도 머무는 공간으로 기능할 때 주변 상권, 문화 활동, 지역 이미지까지 연쇄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양천 야간경관 개선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양천구가 선택한 전략적 투자로 해석된다.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안양천이 낮뿐 아니라 밤에도 안전하고 아름다운 수변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주민 누구나 일상 속에서 쉼과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도시 경관과 보행 환경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빛은 공간을 바꾸고, 공간은 사람의 움직임을 바꾼다. 안양천을 따라 이어진 500m의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도시의 밤을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다. 이 변화가 일회성 연출에 그치지 않고, 양천구 전반의 야간 도시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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