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눈높이는 누구의 것인가 – 국회의원 갑질 논란을 보며

 

‘국민의 눈높이’라는 말은 정치인들이 위기를 모면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마치 모든 판단의 기준이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국민은 그 기준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최근 벌어진 두 사건은 그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리안투데이] 국회의원 갑질 논란 관련 AI이미지 © 임승탁 기자

군대에서 한 지휘관이 ‘갑질’ 논란에 휘말리자 곧바로 정직이라는 중징계 처분이 이뤄졌다. 비교적 신속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최근 장관 후보자 지명 후에 불거진 한 국회의원의 ‘갑질’ 논란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보좌관에게 폭언과 인격모독, 사적 업무 강요 등 구조적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는 여전히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상태다. 당당히 청문회장에 나서 “소명하겠다”고 말하고, 여권은 그를 감싸는 분위기다.

 

과연 국민의 눈높이는 어디에 있는가? 정치인은 그래도 되고, 군인은 안 되는가? 이렇게 적용되는 기준을 과연 ‘국민’이 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국민을 핑계로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준을 흔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보좌관 갑질은 단순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 보좌관은 국회의원의 정책과 입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급여는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국회의원이 그들을 사적으로 부리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며, 부당한 업무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세금을 사유화하고, 입법기관을 개인의 사무실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매우 은밀하게 반복된다는 점이다. 군대는 계급사회지만 징계가 빠르고 직접적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갑질은 언론에 보도돼야만 드러나며, 그마저도 정치적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무마된다. 의원 개인은 “억울하다”고 말하고, 정당은 “정치 공세”라고 맞받는다. 보좌관은 피해자임에도 불이익을 받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 많다.

 

정치는 공적 영역이다. 공직자는 단지 성과로만 평가받을 수 없다. 아무리 결과가 좋더라도 그 과정에서 조직이 병들고 사람이 다친다면, 그 성과는 독이다. “일만 잘하면 된다”는 논리는 위험한 문장이다. 민주주의에서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 방식이다.

퇴계 이황이라면 이렇게 꾸짖었을 것이다.

“공직자는 어짐과 공정함으로 백성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 덕이 없는 자에게 권력을 맡기는 것은 백성을 벌하는 일이다.”

공직자는 누구보다 엄격한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기준은 더 높아져야 한다. 그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뿐인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실제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다.

 

국회의원이 보좌관에게 갑질을 한다는 것은, 결국 국민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갑질을 방조하고 변명하는 정치권 전체가, 그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 임승탁 기자: geumsan@thekoreantoday.com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남기기

📱 모바일 앱으로 더 편리하게!

코리안투데이 평택를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신 뉴스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