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서울의 동부에 자리한 동대문구는 그 지역이 도성 4대문의 하나인 동대문(東大門 : 興仁之門의 속칭) 밖에 자리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동대문을 경계로 한 동쪽에 있음을 뜻한다.
●1900년대 이전 역사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으로 많은 동리(洞里)가 한 계(契)게 속하게 되었는데, 동서(東署) 숭신방 동문외계(東門外契)에 신설동 · 신리 ·우산 ·각리 등이 속했으며, 제기리 · 용두리 · 전농리 · 답십리 · 청량리 · 회묘동 · 휘경원 · 이문동 등 오늘날 동대문구의 대부분은 동부 인창방 동소문외계(東小門外契)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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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이전 역사
1910년 일제는 한성부라는 이름을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미명 아래, 그들의 수도인 동경(東京)의 꼬리글자인 ‘경(京)자’와 조선의 수도 한성(漢城)의 머리글자를 버리고 ‘성(城)’자를 떼어 ‘겐소(京城)’라는 이름으로 고쳤다.
이듬해인 1911년 4월 1일 일제가 경성부를 5부(府) 8면(面)으로 개편 할 때 종전 성외 지역의 방(坊)을 면(面)으로 거쳐 숭신방이 숭신면으로, 인창방이 인창면으로 바뀌었으며, 이에 따라 경성부 숭신면에는 신설계 등이, 경성부 인창면에는 용두리 · 제기리· 전동리·답십리·청량리·회묘동·휘경원·이문동 등이 속하였다.
그 뒤 1936년 일제가 경성부 구역확장을 하면서 고양군의 숭인면은 경성부에 다시 편입되었으며, 이때 서울의 동명은 전부 정(町)은 동대문구와 성동구로 분할 편성되었다. 이때 동대문구에 속한 정(町)은 창신·숭인·신설·안암·종암·돈암·용두·제기·청량·회기·이문·휘경·전농·답십리 등 14개 정(町)이었으며, 이듬해 11월 성북동을 편입하여 15개 정(町)으로 되었다.
1946년 9월 28일 경성부가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고, 그해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인 정(町)·통(通)·정목(丁目) 등을 동(洞)· 로(路)·가(街)로 개정하였으며, 1949년 8월 13일 성북구가 신설됨에 따라 동대문구의 관할구역이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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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역사
1955년 4월 서울특별시 조례에 따라 동제(洞制)가 실시되고, 지방자치법에 의한 행정구역으로 21개 행정동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1936년 서울시 구역확장에 따라 경기도의 많은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었는데, 이때 동대문구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의 상봉리, 중화리, 묵동리, 신내리, 망우리가 편입되어 크게 확충되었다.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의 구역변경이 있었는데 동대문구의 창신동·숭인동 및 신설동 일
부가 종로구에, 면목동·용두동·답십리동의 각 일부가 성동구에, 보문동과 신설동의 각 일부가 성북구에 편입되었으며, 대신 성동구의 중곡동·능동·군자동의 각 일부가 동대문구에 편입되었고(이로써 장안동이 신설됨), 성북구의 종암동·안암동·석관동의 각 일부가 동대문구에 편입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동대문구의 행정동은 36개 동에서 32개 동으로 축소되었다.
1988년 1월 1일에 인구 76만 명이 넘는 구는 구획이 재조정됐는데, 이때 동대문구 관할에 있던 면목동·상봉동·중화동·묵동·망우동·신내동은 신설된 중랑구의 관할이 되었으며, 동대문구는 신설동·용두동·제기동·전농동·답십리동·장안동·회기동·청량리동·휘경동·이문동 등 10개 법정동과 14개 행정동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대문구는 서울시의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중랑천을 경계로 중랑구에 접하고, 서쪽은 성북구·종로구, 남쪽은 성동구, 북쪽은 도봉구와 각각 이웃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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