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마음이 불러오는 조용한 행복

 

좁은 골목길에서 차 두 대가 마주 섰습니다.

길은 한 대가 겨우 통과할 만큼 비좁았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운전자는 동시에 후진을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조심조심 물러선 끝에

두 차가 겨우 서로 비켜갈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

두 운전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같이 웃었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머릿돌9. 비우는 마음이 불러오는 조용한 행복 © 지승주 기자

 

“먼저 가십시오.”

“아닙니다, 먼저 가세요.”

 

길가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누가 이겼는지도,

누가 손해 봤는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한 걸음 물러섬이

누군가의 길을 열어주는 순간,

그 좁은 골목길 안에

묘한 따뜻함이 번졌습니다.

 

어느 날,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원 초과로 엘리베이터는 몇 번이나 그냥 지나갔습니다.

기다리던 사람들 사이에

조금씩 짜증과 한숨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두세 사람쯤 탈 수 있을 만큼

엘리베이터가 빈 채로 올라왔습니다.

 

제일 앞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발을 내밀다 말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먼저 타시죠.”

“아니에요, 먼저 타세요.”

 

양보하다가 결국

둘 다 타지 못하고

문이 다시 닫혀 버렸습니다.

 

잠깐의 허탈함 뒤에

엘리베이터 앞에는

묘한 미소들이 번졌습니다.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 행동 하나가 주는 따뜻함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 건물 복도에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래도 분명 존재하는

“기분 좋은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시장 한 구석,

길가 좌판 앞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광주리를 든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있었습니다.

 

젊은 새댁이 값을 치르자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덤으로 주는 거니까

이거 더 가져가슈.”

 

새댁이 손을 내저으며 웃습니다.

 

“할머니, 괜찮아요.

제가 조금 덜 먹으면 되니까

놔두시고 더 파세요.”

 

누구도 손해를 본 것 같지 않은데

누구도 이익만 챙긴 것 같지도 않은 장면.

 

주고,

거절하고,

그러면서 서로의 형편을 생각하는 이 작은 대화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입가에

밝은 미소를 번지게 했습니다.

 

이렇듯 작은 배려와 양보,

자신을 조금 비우는 마음은

생각보다 더 큰 울림을 남깁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만 예뻐서가 아닙니다.

 

눈부신 꽃잎 아래에서

조용히 꽃을 받치고 있는

푸른 잎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더 빛나는 것도

하늘이 어둠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캄캄하게 물러섰기에

그 위에서 별이 빛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도

누군가의 빛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한 발 물러서 준 적이 있습니까.

그 순간,

당신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더 환하게 비춰주는

“푸른 잎”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더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조금 더 높은 자리,

조금 더 많은 소유,

조금 더 주목받는 위치.

 

그러나 돌아보면

삶을 가장 깊이 흔드는 행복은

무언가를 “더 갖는 순간”보다

무언가를 “비워주었을 때”

더 크게 찾아왔다는 걸 깨닫습니다.

 

한 번은

오랜 세월 회사에서 일하다

정년 퇴직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 같아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물러섰기에

후배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구나.

내가 비워 주었기에

새로운 기회가 누군가에게 열렸구나.”

 

그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볼 때

진짜 위로가 되었던 것은

자신이 이룬 성과보다

누군가에게 내어준 자리였습니다.

 

비움은

“나는 이제 쓸모가 없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비움은

“이제 다른 이가 빛날 차례”라고 인정하는

당당한 선택입니다.

 

어느 수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득 찬 그릇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다.

 

얼마나 소유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비워져 있는지가

그 사람의 넓이를 결정한다.”

 

당신의 마음 그릇은 어떻습니까.

 

자존심, 비교, 미움, 억울함이

너무 빼곡해서

새로운 위로 한 방울 들어갈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 건 아닐까요.

 

조금만 비워내면

조금만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

뜻밖의 평안과 기쁨이

조용히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젖은 낙엽처럼

한곳에 들러붙어

움직이기를 두려워하는 삶이 아니라,

 

가볍게 바람을 타고

한 번쯤은 다른 이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삶을

꿈꾸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가겠다고 밀치지 않고,

먼저 가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태도.

 

더 가지겠다고 움켜쥐지 않고,

덜 가져도 괜찮다며

다른 이의 사정을 먼저 떠올리는 마음.

 

그 모든 작은 선택들이 모여

당신의 일상은

조용하지만 깊은 행복으로 물들어 갑니다.

 

행복은 요란하게 오지 않습니다.

비워진 마음의 틈 사이로

소리 없이 스며듭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도

한 번쯤은 이런 기회를 마련해 보십시오.

 

좁은 골목길에서 먼저 물러서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번 양보하고,

시장 좌판에서 한 번 더 웃으며 건네어 보십시오.

 

그 순간,

당신은 이미

“비움이 불러오는 조용한 행복” 한가운데 서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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