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 동명의 유래는 조선 초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도읍을 정하려고 이곳을 밟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이곳이 도성, 즉 동대문(東大門)으로부터 10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하여 왕십리(往十里)와 같은 의미로 답십리(踏十里)라 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코리안투데이] 옛날 답십리 촬영 현장을 재현한 모형과 사진(자료제공: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 박찬두 기자 |
또한 청계천 하류인 이곳은 들(논)이 넓어 답십리(畓十里)라 하였고, 농본 국가인 조선 시대 국왕(國王)이 일 년에 한 차례씩 농민들의 고통을 체험코자 이곳에 이르러 논둑을 밟으며 모내기에 임했기 때문에 답십리(踏十里)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정작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예전에 이 지역에는 답십리의 여러 마을 중 제일 먼저 생겨났다는 「원마을–일명 원동(元洞)」과 원마을 너머에 있었다는 「너머마을–일명 월동(越洞)」, 원마을 위쪽이라 하여 붙여진 「웃마을」, 「작은답십리」 등 자연 부락이 있었으며, 답십리3동에는 「도단(都壇)-일명 장영당」이라는 신당(神堂)이 있습니다.
현재 답십리 지역엔 「자동차부품상가」, 「고미술상가」, 「황물상가」 등 특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답십리근린공원」, 「간데메공원」, 「동대문 문화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글 제공 : 동대문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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