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2화: 신화와 역사 사이 – 단군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2화: 신화와 역사 사이 – 단군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100일의 시험. 어둠 속에서 쑥과 마늘만으로 버티는 것. 곰은 인내했고, 호랑이는 포기했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후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건국했다는 신화를 아무도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여겼고, 늑대는 로마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원전 2333년,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는 우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삼국유사》의 일연 스님이 ‘고기(古記)’를 인용해 기록한 단군신화. 그로부터 6년 후 《제왕운기》의 이승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같은 시대, 불과 몇 년 사이에 왜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전해졌을까? 신화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 DNA다.

시대의 풍경

13세기 후반, 고려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30여 년간 이어진 몽골과의 항쟁 끝에 결국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했고, 충렬왕 때에 이르러서는 왕의 이름마저 ‘충(忠)’자를 붙여야 했다. 바로 이 시기, 승려 일연은 1281년 《삼국유사》를 편찬하며 단군신화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1287년, 원의 지배에 저항하다 파직된 이승휴는 은둔하며 《제왕운기》를 저술했다. 두 사람 모두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대에 우리의 뿌리를 찾고자 했다. 마치 일제강점기 신채호가 《조선상고사》를 쓴 것처럼, 국난의 시대에는 늘 역사가 호출되었다.

“古記云 昔有桓因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고기에 이르되,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하거늘)”

– 《삼국유사》 권1, 기이 제1, 고조선조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로마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늑대의 젖으로 자란 후 도시 건설을 둘러싼 갈등으로 형이 동생을 죽이고 로마 건국

🗿 일본

진무 천황 신화 – 기원전 660년 건국 주장. 천조대신의 후손이 야마토 지역에 정착하여 일본 건국

🏺 그리스

테세우스의 아테네 건국.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도시국가 아테네의 기초를 확립

[이미지: 각저총 씨름도 벽화 –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 큰 나무 아래 곰과 호랑이가 등을 맞대고 앉아있는 장면. 단군신화의 모티브가 고구려 시대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

📜 그날의 현장

“태백산 신단수 아래, 어둠이 내린 굴속. 곰과 호랑이가 환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환웅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내밀었다. ‘백일 동안 이것만 먹고 햇빛을 보지 마라.'”

“스무하루째 되는 날, 호랑이가 울부짖으며 굴을 뛰쳐나갔다. ‘더는 못 참겠다!’ 하지만 곰은 묵묵히 쑥을 씹었다. 그리고 백일째 되는 날, 곰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 이것은 단순한 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문명을 받아들이는 자와 거부하는 자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단군신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병도는 환웅을 하늘을 숭배하던 이주 세력으로, 웅녀를 곰 토템을 가진 토착 부족으로 해석했다. 호랑이 토템 부족은 융화에 실패하고 밀려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일까?

최남선은 ‘단군’이 몽골어 ‘텡그리(하늘)’와 같은 어원이며, 제사장을 뜻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시베리아 일대에는 곰 숭배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만주족, 오륜춘족, 허저족 사이에는 시조와 모웅(母熊)이 결혼했다는 신화가 전한다. 심지어 중국 산둥성 무씨사당 화상석에도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어, 이 신화가 동북아시아 전체에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차이다.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웅녀와 결합하지만, 《제왕운기》에서는 환웅의 손녀가 단수신(檀樹神)과 결합한다. 부계 중심에서 모계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불과 6년 사이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13세기에도 단군신화가 여러 버전으로 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문헌

삼국유사(1281)
제왕운기(1287)

핵심 상징

곰(인내, 지모신)
호랑이(야성, 산신)

시련의 의미

100일 금기
문명 수용 과정

건국 이념

홍익인간
재세이화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토테미즘 해석 – 곰과 호랑이는 각각 다른 토템을 가진 부족들의 상징. 천손 집단과 토착 집단의 결합으로 고조선 성립

대안적 견해

제의적 해석 – 100일간의 시련은 성인식 등 통과의례. 곰의 동면과 재생은 농경문화의 순환 사상을 반영

오늘 우리에게 묻다

‘홍익인간(弘益人間)’ –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 이것이 단군신화가 전하는 건국이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표현은 《삼국유사》 이전에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일연이 불교의 ‘홍익중생(弘益衆生)’에서 차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럼에도 1945년 광복 후 교육법 제1조에 명시되어 대한민국 교육이념이 되었다.

신화의 힘은 여기에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그것은 한 민족의 꿈과 가치관을 담는다. 로마인들이 늑대를 자랑스럽게 여기듯, 우리는 인내의 상징인 곰과 용맹의 상징인 호랑이를 모두 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호랑이)와 곰두리(곰), 2018년 평창올림픽 수호랑(호랑이)과 반다비(곰). 우리는 여전히 단군신화 속에 살고 있다.

구분 고조선 시대 현재
건국 이념 홍익인간 – 인간세상을 이롭게 교육기본법 – 민주시민 양성
정체성 상징 곰(인내), 호랑이(용맹) 한국 호랑이, 올림픽 마스코트
가치관 천신-지신 결합, 제정일치 민주주의, 다원주의

[이미지: 현대적 재해석 – 1988 서울올림픽 호돌이와 곰두리, 2018 평창올림픽 수호랑과 반다비. 단군신화의 두 동물이 현대 한국의 상징으로 계승되는 모습]

📚 더 깊이 알아보기

  • 《제왕운기》에서 단군의 활동 무대가 평양이 아닌 구월산으로 한정된 이유 – 이승휴와 문화현 출신 류경의 개인적 친분이 영향
  • 북한의 1993년 단군릉 발굴 – 5,011±267년 전 유골 주장, 남한 학계는 고려시대 묘로 추정
  • 중국 산둥성 무씨사당 화상석의 곰과 호랑이 – 동북아시아 공통 신화소의 증거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47명의 단군, 1,908년의 통치. 그것은 직책이었고, 전통이었고, 정신이었다. 신화와 역사 사이, 그 경계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역사적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다. 4,35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홍익인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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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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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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