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4일 – 경성, 인구조사와 신궁 준비 사이에서

[100년 전 오늘] 1925년 10월 4일 – 경성, 인구조사와 신궁 준비 사이에서
10:10
 
1925년 10월 4일 (음력 8월 17일) 일요일

100년 전 오늘

10:10 10:10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프닝

1925년 10월 4일 일요일.
오전 10시 10분, 경성 종로 거리에는 일요일 오전의 한산함이 흐른다.

사흘 전인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조선 전역에서 근대적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조선 총인구 1,902만여 명이 집계되었다. 그리고 11일 뒤인 10월 15일, 남산에서는 조선신궁 진좌제가 거행될 예정이다. 식민 통치의 두 얼굴 – 수탈을 위한 조사와 황민화를 위한 신사 – 사이에 낀 평범한 일요일 오전이다.

📰 그날의 경성

📊 간이국세조사 집계 중

10월 1일 0시를 기준으로 실시된 간이국세조사의 집계가 진행 중이다. 조선총독부는 이번 조사를 통해 전국의 인구를 파악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노동력 착취와 경제적 수탈을 위한 기초 자료 수집이 목적이다. 최종 집계 결과는 조선 총인구 1,902만여 명(남자 972만 6,000명, 여자 929만 4,000명)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 조선신궁 진좌제 준비

10월 초부터 경기도 경찰부는 각 경찰서장을 소집해 경계구역을 할당하고 사복경찰을 매복시키기 시작했다. 10월 13일 경성역에 일본에서 신체(神體)를 실은 칙사가 도착하고, 15일 남산 조선신궁에서 진좌제가 거행된다. 총독부는 “불령선인들”의 방해를 우려하며 경성 전역에 삼엄한 경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 조간신문 휴간

일요일인 오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휴간이다. 평소라면 신문 배달부들이 새벽부터 골목을 누볐겠지만, 오늘 아침 종로 거리는 고요하다. 지난 9월 25일, 시대일보는 “임시정부가 조선신궁 낙성을 기회로 폭탄특공대를 보냈다”는 기사를 실으려다 발행이 금지된 바 있다.

💰 1925년 가을의 물가

• 조선신궁 공사비: 총 156만 엔 • 1엔 ≈ 현재 약 15,000원 • 당시 일반 노동자 일당: 50전~1엔

🗺️ 경성과 한반도

조선공산당의 시련

올해 4월 17일 서울 시내 식당 아서원에서 비밀리에 창립된 조선공산당은 현재 조직 확대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 달여 뒤인 11월 22일, 신의주에서 김재봉 등 주요 간부들이 조선총독부 밀정에 의해 체포되는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이 발생할 예정이다.

해외 독립운동

상하이 임시정부는 3월 23일 이승만을 면직하고 박은식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만주에서는 3월 15일 신민부가 조직되었고, 간도와 연해주의 한인 사회는 독립운동 기지로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일제의 조선신궁 준비에 맞서, 독립운동가들은 방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이미지: 1925년 10월 4일 경성 종로 거리 풍경 – 인력거, 전차, 보신각, 남산 조선신궁 공사 현장 원경]

🌍 그날의 세계

 
 

🇨🇳 중국 – 군벌 혼전

국민당 내부에서는 8월 20일 재정부장 랴오중카이가 암살된 이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상하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둥에는 중산대학(9월 15일 개칭)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 각지의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본국의 소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일본 – 다이쇼 데모크라시

일본 제국은 4월 22일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 탄압을 강화했다. 5월 5일에는 25세 이상 남성에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했지만, 조선인과 대만인에게는 실질적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관동대지진(1923년) 이후 복구가 진행 중이다.

 

🌍 10월 4일의 세계

소련: 11년간 제한되었던 알코올 음료 규제가 전면 해제되었다.
시리아: 대시리아 반란 중 반군이 하마를 점령했다.
핀란드: 어뢰정 S2가 폭풍으로 침몰, 승조원 53명 전원 사망.
미국: World Series 진행 중 (워싱턴 vs 피츠버그, 피츠버그 3-1 리드).

🏮 경성 24시 – 일요일의 기록

🌅 아침 풍경

일요일 새벽, 신문 배달 없는 고요한 아침
종로 보신각 종소리 없는 평화
인구조사 끝난 안도감

☀️ 낮의 도시

남산 조선신궁 공사장의 망치 소리
경찰들의 순찰 강화
일요일 휴식하는 시민들

🌙 밤의 경성

가스등 켜지는 종로 거리
11일 뒤 진좌제 준비하는 경찰들
밤의 경비 강화

🔄 100년의 거울

구분 1925년 2025년
인구조사 수탈 목적 강제조사 복지 목적 자발적 참여
종교 신사참배 강요 종교의 자유
인구 1,902만 명 남한 약 5,100만 명
정치 일제 식민통치 민주공화국

💡 역사의 교훈

1925년 10월 4일, 경성의 거리는 표면적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인구조사라는 이름의 수탈 준비와, 신궁 건설이라는 황민화 정책 사이에서 조선인들은 숨죽이며 살아갔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조사에 응하고,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자유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한 희생과 저항의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지: 100년 전후 비교 – 1925년과 2025년 종로 거리, 같은 위치 다른 시대]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이 시간, 10시 10분
1925년 10월 5일을 만납니다.

 

“로카르노 조약 협상 시작, 유럽의 평화를 향한 노력”

어제의 이야기

1925년 10월 3일

10:10

10:10

내일의 이야기

1925년 10월 5일

The Korean Today
global@thekoreantoday.com

매일 오전 10시 10분, 100년 전 오늘을 전합니다

코리안투데이 “100년 전 오늘” 시리즈
매일 오전 10시 10분 발행

© 2025 The Korean Today. All rights reserved.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남기기

📱 모바일 앱으로 더 편리하게!

코리안투데이 완주를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신 뉴스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