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인생의 종착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분명한 진실 앞에서 종종 고개를 돌린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고, 장례는 조용히 치러지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처럼 여겨진다. 현대사회는 죽음을 철저히 가리고, 가능한 한 멀리 밀어낸다. 우리는 ‘삶’을 위한 교육은 끊임없이 받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는다.
그렇기에 웰다잉은 단순한 죽음 준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묻는 철학이다. 죽음을 직면할 용기가 생길 때, 삶은 오히려 명확해진다.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현재의 시간은 더욱 귀중하게 다가온다. 죽음을 외면할수록 삶은 불안정해지고, 죽음을 인식할수록 삶은 충만해진다. 웰다잉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있다.
죽음에 대한 철학은 결코 우울한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삶에 대한 애착을 일깨우는 계기다. 죽음을 고민한 사람일수록 오늘 하루를 더 진지하게 바라본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면?”이라는 질문은 단순한 상상이 아닌, 삶의 본질을 마주하는 물음이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게 된다.
![]() [코리안투데이] 삶의 빛을 찾는 사람 모습 © 김미희 기자 |
고대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죽음과 삶의 연결을 사유해왔다. 플라톤은 철학을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 했고, 몽테뉴는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삶의 끝을 준비하는 일은 오히려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임을 그들은 일깨워준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을 더욱 능동적으로 만드는 힘이다.
예술, 특히 영화는 이 죽음의 철학을 대중에게 전하는 훌륭한 도구다. 영화 속 인물들의 퇴장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던지는 질문이자 메시지다.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치열하게 저항하는 모습,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우리 자신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다. 이처럼 웰다잉은 단지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이 아니라 삶을 회복하는 예술적 사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는 죽음을 두려움 속에 숨겨둘 때가 아니다. 죽음은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삶의 의미를 재정의하게 한다. 웰다잉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빛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직면하게 된다. 죽음의 철학은 곧 삶의 철학이다. 웰다잉, 그것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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