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8화: 고조선의 계급사회 –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

[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8화: 고조선의 계급사회 –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

2025년 대한민국.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재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2,300년 전 고조선에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을까?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을까? 가난한 평민이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

고조선의 계급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뿌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갈등했는지. 그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시대의 풍경

기원전 2세기 초, 고조선은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섰다. 전쟁과 혼란을 피해 수많은 유민들이 고조선으로 몰려들었다. 기원전 195년, 연나라 출신 위만이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패수를 건너왔다.

당시 고조선을 다스리던 준왕은 위만을 박사(博士)라는 관직에 임명하고 서쪽 변방 100리 땅을 봉토로 주었다. 위만은 상투를 틀고 고조선의 복색을 입었다. 겉으로는 고조선에 충성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은밀히 세력을 키워나갔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패수를 건너 조선에 항복하였다. 준왕이 그를 신임하여 박사로 삼고, 규를 하사하며 100리 땅을 봉하여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 《위략》(魏略) 동이전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한나라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 군현제로 전국을 직접 통치하며, 엄격한 관료제와 과거제의 원형을 갖춤

🗿 로마 공화정

파트리키(귀족)와 플레베이언(평민)의 계급 투쟁. 원로원과 민회가 공존하는 공화정 체제 운영

🏺 인도 마우리아

카스트 제도가 사회 전반에 확립.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의 엄격한 신분 구분

[이미지: 고조선 무덤의 규모 차이 – 대형 적석총과 소형 토광묘의 비교, 왕족과 평민의 신분 격차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

📜 그날의 현장

“기원전 109년 초여름, 왕검성 조정. 한나라 무제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거왕이 좌정하고, 여러 명의 ‘상’들이 둘러앉았다. 조선상 역계경이 일어섰다. “왕이시여, 한나라와 화친을 맺어야 합니다. 전쟁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다른 상들이 웅성거렸다. 니계상 삼이 반박했다. “항복은 곧 멸망입니다.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거왕은 결사항전을 선택했다. 역계경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후, 그는 2,000호를 이끌고 남쪽 진국으로 떠났다. 고조선은 전제왕권 국가가 아니었다. 신하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떠날 수 있는 나라. 그것이 고조선이었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고조선의 계급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을까? 《사기》와 《한서》에 기록된 관직명을 통해 우리는 고조선 사회의 계층을 엿볼 수 있다. 최상층에는 왕(王)이 있었다. 단군, 부왕, 준왕, 우거왕 등 세습되는 군주였다. 하지만 고조선의 왕권은 중국의 황제나 로마의 독재관처럼 절대적이지 않았다.

왕 아래에는 ‘상(相)’이라는 독특한 계층이 있었다. 중국의 승상과 유사한 명칭이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다. 고조선에는 여러 명의 상이 동시에 존재했다. 조선상 역계경, 조선상 노인, 니계상 삼, 상 한음 등 이름이 전해지는 상만 4명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가졌다는 점이다. 역계경은 자신의 무리 2,000호를 이끌고 왕의 명령을 거부한 채 남하할 수 있었다.

상 아래로는 대부(大夫), 박사(博士), 장군(將軍) 등의 관직이 있었다. 대부는 지방 통치와 군사 지휘를 담당했고, 박사는 변방 수비와 외교를 맡았다. 장군 왕겹처럼 왕의 직속 군대를 지휘하는 전문 무관도 있었다. 이들 아래로 서인(庶人)이라 불리는 자유민층이 있었고, 최하층에는 노비(奴婢)가 있었다.

최상층

왕(王) – 세습 군주, 제사장 역할

귀족층

상(相), 대부, 박사, 장군 – 독자 세력 보유

평민층

서인(庶人) – 농민, 수공업자, 상인

최하층

노비(奴婢) – 전쟁포로, 범죄자, 채무노예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노태돈)

고조선은 부체제 초기 형태로, 왕과 여러 ‘상’들이 회의체를 통해 국가를 운영했다. 상들은 지역 세력 집단의 대표자로 상당한 자치권을 보유했다.

대안적 견해

상을 왕권 아래 일원적 관료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장군 왕겹의 존재는 왕이 직속 관료 조직을 통해 다른 세력을 통제했음을 시사한다.

땅이 말해주는 진실

계급의 존재는 무덤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지배층의 무덤은 거대했다. 압록강 유역의 적석목곽분은 큰 통나무로 곽을 만들고 그 위에 수천 개의 돌을 쌓아 올린 거대한 구조물이다. 무덤 규모만으로도 막강한 권력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평민들의 무덤은 단순한 토광묘였다. 땅을 파고 시신을 안치한 후 흙으로 덮는 소박한 형태다. 부장품에서도 차이가 극명하다. 지배층 무덤에서는 청동검, 청동 거울, 옥 장식이 쏟아졌다. 평민 무덤에서는 민무늬토기와 석기 몇 점이 전부였다.

주거지에서도 신분 차이가 보인다. 대형 지상 가옥은 귀족들이 살았다. 반지하 움집은 평민들의 거처였다. 고조선은 분명 계급사회였다. 하지만 신분 이동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8조법의 속죄금 제도는 돈으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였다.

[이미지: 고조선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 비교 – 왼쪽: 청동검, 거울, 옥 장식 (왕족), 오른쪽: 토기와 석기 (평민)]

오늘 우리에게 묻다

2,300년 전 고조선의 계급사회와 오늘날 대한민국은 얼마나 다를까? 형식적으로는 신분제가 사라졌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재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고조선의 역계경은 왕의 결정에 반대하며 2,000호를 이끌고 떠났다. 오늘날로 치면 장관이 대통령 정책에 반대하며 지지자들과 함께 탈당하는 것이다. 고조선은 왕권이 약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떤가?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 하지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살아있다. 역계경의 이탈처럼, 국민은 잘못된 정부를 바꿀 수 있다.

구분 고조선 시대 현재
정치 왕과 상들의 회의체 정치, 신하가 왕 결정 거부 가능 대통령제, 국회와 사법부의 견제, 탄핵제도 존재
신분 왕족-귀족-평민-노비, 속죄금으로 신분 상승 가능 법적 평등, 사실상 경제적 계층 고착화
기회 제한적이나 경제력으로 신분 변화 가능 형식상 개방, 현실적 ‘계층 이동 사다리’ 약화

📚 더 깊이 알아보기

  • 역계경이 남하한 전북 지역에서는 고조선계 유물이 대량 출토되어, 그의 이주가 역사적 사실임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다.
  • 고조선의 ‘상’ 제도는 후대 고구려의 ‘제가회의’로 계승되어, 왕과 귀족들이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한국 고대 정치의 특징이 되었다.
  • 8조법의 속죄금 50만전은 당시 쌀 500석, 약 100가구의 1년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노비가 자력으로 속량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고조선은 완벽한 평등 사회도, 절대 왕권의 전제국가도 아니었다. 왕과 귀족, 평민과 노비가 공존하고 갈등하며 역사를 만들어갔다. 신분은 존재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경제력으로, 능력으로, 때로는 배신으로 신분의 벽을 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그 형태만 바뀔 뿐이다. 2,300년 전 고조선의 계급사회가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평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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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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