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20화: 단군은 누구인가 – 신화인가 역사인가

[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20화: 단군은 누구인가

2025년 개천절 아침, 수많은 한국인이 단군상 앞에 섰다. 그러나 그들이 경배하는 대상이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 실존 인물인지 신화 속 존재인지, 아무도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1281년, 몽골의 침략 속에서 고려의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에 단군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744년 후인 2025년, 단군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다. 실존 인물인가, 신화적 존재인가. 제사장의 직책명인가, 특정 왕의 이름인가. 47명의 단군이 있었는가, 단 한 사람뿐이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학술 논쟁을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 그 자체를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 답의 시작점에 단군이 있다.

시대의 풍경

1281년 여름, 강화도 인근 어느 사찰. 68세 노승 일연이 붓을 들었다. 몽골군의 말발굽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 시절이었다. “옛 기록(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내었다…”

그러나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가 아니었다. 중국 위나라의 『위서(魏書)』에 이미 단군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고 일연은 적었다. 하지만 그 『위서』는 지금 전하지 않는다. 과연 존재하기는 했을까? 학계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있어… 곰이 되어 여자의 몸이 되니 이름하여 웅녀라 하였다. 단군왕검이라 하니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古記云 昔有桓因庶子桓雄… 化而爲女 號曰熊女… 檀君王儉 都阿斯達 始稱朝鮮)”

– 출처: 『삼국유사』 권1, 기이편 고조선조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13세기 고려

몽골 침략 속에서 민족 정체성이 절실했던 시기. 일연은 단군을 기록하며 민족의 뿌리를 찾았다.

🗿 중앙아시아

몽골·터키 유목민들이 ‘텡그리(하늘신)’를 최고신으로 섬기던 시대. 단군과 텡그리의 어원적 유사성이 주목받는다.

🏺 동아시아

건국신화를 역사로 기록하던 시대. 일본은 진무천황(BC 660년), 중국은 황제 신화를 사실로 여겼다.

 [이미지: 『삼국유사』 단군조선 기록 원문과 다양한 단군 표기법 비교 – 壇君(제단 단) vs 檀君(박달나무 단) vs 단군 한글 표기]

📜 그날의 현장

“1281년 강화도 어느 사찰, 일연이 책상 앞에 앉는다.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는 무너질 위기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그가 찾은 답은 ‘단군’이었다.”

“1993년 10월 평양 강동군, 북한 고고학자들이 한 무덤을 발굴한다. 인골 86개. 전자상자성공명 연대측정 결과, 5,011±267년 전. 김일성이 선언한다. ‘단군은 신화가 아니다. 실존 인물이다.’ 남한 학계는 냉소한다. ‘정치적 조작이다.'”

“2016년 여론조사, 한국 성인 1,004명에게 물었다. ‘단군은 실존 인물인가?’ 3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47%는 ‘가상의 인물’이라 했다. 우리 민족의 시조, 그러나 우리는 그를 믿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단군에 관한 문헌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다. 1281년 일연의 『삼국유사』는 ‘壇君(제단 단)’으로 썼고, 6년 후 1287년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檀君(박달나무 단)’으로 적었다. 1314년 원나라 학자가 쓴 『응제시주』는 중국 문헌 최초로 단군을 언급했고,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는 조선 왕조가 공식적으로 단군을 국조로 인정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단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남선은 1927년 「불함문화론」에서 단군이 제사장을 뜻하는 직책명이라 주장했다. 무당을 ‘단골’이라 부르는 것이 그 흔적이라는 것이다. 현대 학계는 더 나아가 단군이 몽골·터키 유목민의 ‘텡그리(Tengri, 하늘신)’와 같은 어원이라 본다. 텡그리는 하늘을 뜻하기도 하고, 하늘의 뜻을 전하는 제사장을 뜻하기도 했다.

만약 단군이 직책명이라면,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단군세기』(진위 논란 있음)는 47명의 단군이 2,096년간 고조선을 다스렸다고 기록한다. 제1대 단군 왕검, 제2대 단군 부루, 제3대 단군 가륵… 제47대 단군 고열가까지. 단군은 직책이고, 왕검·부루·가륵은 개인의 이름이라는 해석이다.

최초 기록

『삼국유사』 1281년, 일연

표기 논쟁

壇君 vs 檀君

어원

텡그리(Tengri) = 하늘신, 제사장

단군 수

1명설 vs 47명설

🔍 학계의 시각

남한 주류 학계

단군은 신화적 인물 또는 제사장을 뜻하는 직책명. 고조선은 실존했지만 BC 2333년 건국설은 신화적 연대. 실제 국가 형성은 BC 7~4세기로 추정.

북한 학계

1993년 단군릉 발굴 이후 입장 전환. 단군은 5,011년 전 실존 인물. 평양이 고조선 중심지. 단군은 조선민족 원시조. (남한 학계는 정치적 조작으로 비판)

오늘 우리에게 묻다

2025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다. BTS와 블랙핑크는 전 세계를 열광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망설인다. 단군이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군이 실존했는가가 아닐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2,000년 넘게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여겨왔다는 사실이다. 고려는 몽골 침략 속에서 단군을 기록했고, 조선은 평양에 단군 사당을 지었으며, 대한제국은 단기를 국가 연호로 정했다.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의식’ 그 자체다.

시대 단군 인식 의미
고려시대 『삼국유사』 최초 기록, 지역신에서 민족 시조로 몽골 침략 속 민족 정체성 확립
조선시대 국조(國祖)로 공식 인정, 평양 사당 건립 국가 정통성의 근원
현대 실존 논쟁 지속, 개천절 공휴일 지정 민족 정체성과 역사의식의 상징

 [이미지: 북한 단군릉 전경(1994년 개건)과 한국 강화 마니산 참성단 – 남북한의 서로 다른 단군 인식을 상징하는 두 유적]

📚 더 깊이 알아보기

  • 북한 단군릉 발굴(1993): 유골 86개 발견, 5,011±267년 전으로 측정. 남한 학계는 연대 측정 방법과 정치적 의도에 회의적 반응.
  • 텡그리 신앙: 몽골·터키 유목민의 최고신. 징기스칸 시대(13세기)에도 텝 텡그리(제사장)의 영향력은 칸(왕) 다음이었다.
  • 2016년 여론조사: 한국 성인 37%만 단군을 실존 인물로 인식. 47%는 가상 인물, 16%는 유보. 56%는 단군을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함.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47명의 제사장이었을 수도, 여러 시대에 걸친 지도자들의 총칭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직책이었고, 전통이었고, 정신이었다.

 

“신화와 역사 사이, 우리는 여전히 단군을 찾고 있다. 그 질문 자체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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