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고조선 편] 제18화: 8조법의 유산 – 한국 법 전통의 시작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고조선 편
제18화: 8조법의 유산 – 한국 법 전통의 시작
2025년 대한민국 법정. 피고인이 범행 후 자수하여 형법 제52조에 따라 감경을 받는다. 이 짧은 조문 속에 2,400년 전 고조선 8조법의 정신이 살아 숨쉰다.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되, 스스로 용서를 받고자 하는 자는 속죄할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이전 고조선에 이미 자수와 속죄의 개념이 존재했다. 이것은 단순한 법조문이 아니었다. 인간의 뉘우침을 인정하고, 회복의 기회를 주는 인도주의적 법 전통의 시작이었다.
고조선의 8조법은 멸망했지만, 그 정신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구려율, 백제율, 신라율, 고려율, 조선의 경국대전을 거쳐 현대 한국법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오늘 우리는 한국 법 전통의 DNA를 추적한다.
◆ 시대의 풍경
기원전 108년, 왕검성이 함락되었다. 고조선은 멸망했지만 그 법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사군이 설치된 후에도 8조법의 정신은 낙랑 지역에 남아 있던 조선인들 사이에서 계속 이어졌다. 『한서』 지리지는 “낙랑 조선 백성들의 범금 8조”라고 기록하며, 이것이 고조선의 유산임을 분명히 했다.
3세기 고구려가 북방을 통일하고, 백제와 신라가 강성해지면서 각국은 독자적인 율령을 반포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8조법의 원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생명 존중, 재산 보호, 신분 질서 유지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낙랑 조선 백성들의 범금 8조가 있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하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을 내야 한다.”
– 『한서(漢書)』 권28, 지리지 8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로마제국
1-2세기 오현제 시대, 로마법 대전 편찬 시작. 속주민에게도 시민권 부여하는 카라칼라 칙령(212년)
🗿 중국
후한~삼국시대, 율령제 발전. 위나라 조조의 군법 엄정. 진(晉)의 『진률(晉律)』 20편 편찬
🏺 인도
쿠샨 왕조~굽타 왕조, 『마누 법전』 체계화. 카스트 법 강화, 다르마(dharma) 중심 법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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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고조선 8조법 죽간과 조선시대 경국대전 형전 편이 나란히 놓인 모습, 2,000년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자수 감경 조항이 동일하게 보존된 것을 보여주는 비교 장면]
📜 그날의 현장
“1469년(예종 원년) 가을, 한성부 육조거리. 새로 편찬된 『경국대전』 형전의 목판이 인쇄되고 있다. 신숙주가 한 조문을 가리킨다. ‘죄를 지은 후 수사기관에 자수한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옆에 선 젊은 서리가 묻는다. ‘상감마마, 이는 『대명률』에 없는 조문이옵니까?’ 신숙주가 미소짓는다. ‘아니다. 이는 우리 조선이 고조선 때부터 지켜온 법통이니라. 2,000년 전 8조법에도 속죄의 길이 있었느니라.'”
“그날 밤, 신숙주는 촛불 아래에서 8조법 기록을 다시 펼쳤다.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되,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그는 붓을 들어 주석을 달았다. ‘自首減輕之法 自古朝鮮始(자수감경지법 자고조선시) – 자수 감경의 법은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고조선 8조법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생명 존중(살인자 사형). 둘째, 신체와 재산 보호(상해 시 곡물 배상, 절도 시 노비화). 셋째, 속죄와 회복의 기회 부여(자수와 속량 제도). 이 원칙들은 이후 한반도 모든 왕조의 법률에 계승되었다.
고구려는 반역죄에 3족을 처벌하는 엄격한 율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부여의 12배 배상법을 계승하여 재산범죄에 경제적 보상 원칙을 유지했다. 백제는 『구당서』 백제전에 따르면 “도둑질한 자는 그 액수의 3배를 배상”하게 했는데, 이는 8조법의 경제적 보상 원칙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신라는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지만, 법 앞의 처벌 기준만큼은 명확했다. 『삼국사기』는 신라가 “도둑을 미워하여 중히 벌했다”고 기록하면서도, 경제적 배상을 통한 해결 방식을 병행했음을 보여준다. 신라 법흥왕 7년(520년) 율령 반포 이후, 법치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
고조선 8조법
BC 4세기 이전, 생명·신체·재산 보호, 자수·속죄 인정
삼국시대 율령
3-6세기, 8조법 계승, 배상법 3-12배 확대
조선 경국대전
1485년, 자수 감경 명문화, 속형(贖刑) 제도
현대 형법 52조
1953년, 자수 감경·면제, 2,400년 전통 계승
🔍 학계의 시각
전통 법제사 연구
8조법은 한국 고유법의 원형이며, 자수 감경·경제적 배상·인명 존중 원칙이 2,000년 이상 일관되게 유지되었다는 ‘법 전통 연속성’ 강조
비교법학적 접근
함무라비 법전, 로마법 등과 비교하면 8조법은 간결하지만 본질을 담았으며, 중국 율령과는 독자적 발전 경로를 보였다는 ‘독자성론’
◆ 오늘 우리에게 묻다
2025년 대한민국 형법 제52조는 “죄를 지은 후 수사기관에 자수한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한 줄에 2,400년 한국 법의 정신이 응축되어 있다. 범죄자도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인도주의, 처벌보다 회복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법 앞의 기회 평등이라는 민주주의가 모두 담겨 있다.
2024년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자수 감경을 받은 사건은 전체 형사사건의 12.3%였다. 교통사고 후 도주하지 않고 자수하면 형량이 1/3 이하로 줄어든다. 이것은 단순한 법 기술이 아니라, 고조선 이래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회개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라’는 철학의 현대적 구현이다.
| 시대 | 법조문 | 핵심 원칙 |
|---|---|---|
| 고조선 (BC 4세기) | 도둑은 노비, 속죄 가능 | 자수·속죄 인정 |
| 조선 경국대전 (1485년) | 자수자 형 감경 | 회개의 기회 부여 |
| 현대 형법 (1953년) | 제52조 자수 감경·면제 | 인권과 회복적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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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2025년 대법원 법정의 모습, 재판장 뒤 벽면에 걸린 ‘법(法)’ 한자와 함께 투명한 유리판에 새겨진 형법 제52조 조문,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자고조선시(自古朝鮮始)” –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문구]
📚 더 깊이 알아보기
- 대법원 도서관에서 『경국대전』 영인본과 『대명률직해』를 열람할 수 있으며, 형전 편에서 자수 감경 조항의 상세한 해설을 확인할 수 있다
- 2020년 한국법사학회는 “8조법에서 현대 형법까지” 특별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2,400년 법 전통의 연속성을 재조명했다
-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에서는 한사군 시대 법 관련 목간과 죽간을 전시하고 있으며, 8조법이 낙랑 지역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보여준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2,400년 전 새겨진 법조문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되,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이 짧은 문장이 고구려율, 백제율, 신라율, 경국대전을 거쳐 2025년 형법 제52조로 살아남았다. 왕조는 바뀌고 제도는 변했지만, 인간의 뉘우침을 인정하고 회복의 기회를 주는 정신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법은 과거가 아니다. 법은 우리 안에 살아 숨쉬는 조상들의 지혜다. 고조선 8조법의 DNA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법정에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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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편 (총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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