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24일 – 총독부 신청사 낙성식 이레 앞, 경성 법정엔 여전히 공산당 사건이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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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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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오전판 · 1926년 9월 24일 금요일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경성, 음력으로는 한가위 사흘 뒤인 8월 18일. 보름 동안 들떴던 거리도 한풀 가라앉고 사람들은 다시 평소 걸음으로 돌아갔다. 광화문 앞 공사장에서는 이레 뒤인 10월 1일 낙성식을 앞둔 총독부 새 청사가 마지막 손질을 받고 있었고, 경성지방법원에는 그날도 방청객이 모여들었다.
[출처: 조선총독부 청사 준공 기록]

그날의 경성

10년을 끌어온 총독부 신청사 공사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1916년 터를 닦아 1920년 정초식, 1923년 상량식을 거친 이 건물은 이레 뒤 이른바 ‘시정기념일’에 맞춰 낙성식을 치르기로 되어 있었다. 예산은 애초 300만 엔에서 675만 1,982엔으로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그 자리를 내주고 광화문은 이미 제자리를 잃은 뒤였다.
[출처: 조선총독부 청사·치안시설 관련 기록]

같은 시각 경성지방법원 법정에서는 이른바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심리가 이어졌다. 강달영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재판은 여러 날에 걸쳐 진행 중이었고, 검거를 피한 김철수와 동지들은 9월 들어 후계 조직을 다시 꾸리려 애쓰고 있었다. 법정 안팎으로 취재진과 방청객이 몰렸다고 전해지나, 이날 구체적으로 어떤 증언이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공산당 관련 기록]

이날 경성의 정확한 날씨와 쌀값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무렵 총독부는 ‘산미증식계획’ 두 번째 해를 맞아 쌀 생산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경성과 한반도경성 법정이 공산당 사건을 붙들고 있는 사이, 남쪽 목포에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해 초부터 이어진 목포 제유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걸고 벌써 여덟 달을 넘겼다. 회사의 회유와 경찰의 개입으로 지도부가 흔들리긴 했지만, 목포 노동계에서는 직종별 노동조합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그해 가을까지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출처: 목포 노동운동사 관련 연구]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이 항구 도시의 몸부림은 신문 한 귀퉁이에 작게 실렸을 뿐이지만, 총독부 신청사가 올라가는 도심의 풍경과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1926년 조선의 두 얼굴이었다.

그날의 세계태평양 건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전날 밤 세계를 뒤흔든 소식이 막 전해지고 있었다. 9월 23일 밤, 세스퀴센테니얼 경기장에 12만 명 넘는 인파가 빗속에 모여 챔피언 잭 뎀프시와 도전자 진 터니의 10라운드 대결을 지켜봤다. 결과는 터니의 판정승. 뎀프시가 쥐고 있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벨트가 처음으로 그의 손을 떠났다. 이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 조선 신문에까지 며칠 안에 실렸을 것으로 보이나, 9월 24일 당일 조선 신문의 구체적 보도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처: 필라델피아 역사 기록, 세계 스포츠사 자료]

중국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9월 중순 장시성의 주요 도시 주장과 난창을 손에 넣은 그의 군대 곁에서, 창장(양쯔강)을 오가던 각국 포함들과의 긴장도 계속되고 있었다. 만주와 국경을 맞댄 조선으로서도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경성 24시아침나절, 종로 거리에는 신청사 완공을 앞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고 전해진다. 관공서에 다니는 이들은 새 청사로 옮길 채비를 슬슬 시작했을 것이고, 법원 근처 다방과 서점가에는 공산당 사건을 두고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정경은 당시 일반적 생활상에 기댄 짐작일 뿐, 이날 그대로 벌어졌다고 단정할 자료는 없다.

해거름 무렵이면 하루 일을 마친 이들이 골목으로 흩어져 갔다. 목포에서는 공장 불빛 아래 노동자들이 다음 모임을 다짐했을 것이고, 경성에서는 법정을 나선 이들이 저녁 신문을 손에 쥐었을 것이다. 이 또한 구체적인 확인은 어렵다.

100년의 거울항목 1926년 2026년정부 청사 공사 10년, 675만 1,982엔통상 3~5년, 디지털 설계공장 노동시간목포 제유공장 하루 12시간 → 요구안 10시간법정 하루 8시간세계 소식 전달 속도태평양 건너 며칠실시간총독부는 10년을 들여 벽돌 건물 하나를 올렸고, 그 그늘 아래 법정에서는 사람들이 사상을 이유로 재판받았으며, 항구에서는 노동자들이 하루 두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여덟 달을 버텼다. 백 년 뒤 오늘, 우리는 그 시절엔 상상조차 어려웠던 여덟 시간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며 산다.

내일, 1926년 9월 25일 토요일. 낙성식이 엿새 앞으로 다가온 경성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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