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15화: 미마지, 바다 건너 춤을 전하다
가면을 쓴 한 사내가 나라(奈良)의 벌판에 섰다. 그의 등 뒤로 백제 사비성의 노을이 아직 남아 있었다.
2026년 오늘, 전 세계 공연장을 채우는 것은 K-POP 무대다. 그런데 1,400여 년 전에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춤과 음악이 이웃 나라의 무대를 통째로 바꿔놓은 일이 있었다. 백제의 악사 미마지(味摩之)가 일본 사쿠라이(桜井)에서 소년들을 모아 가면극 ‘기악(伎樂)’을 가르친 사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사건이 한국 사서에는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록은 오직 일본 쪽 사서에만 남았다. 문화를 전한 쪽은 잊었고, 받은 쪽은 그 이름까지 기억했다 — 이 어긋남 자체가 오늘 우리가 들여다볼 이야기다.
◆ 시대의 풍경
7세기 초, 백제는 무왕(재위 600~641년)의 치세 아래 있었다. 왕흥사와 미륵사 같은 대사찰을 잇달아 짓던 시기로, 불교문화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핵심 장치였다. 이 무렵 백제는 중국 남조(南朝) 및 왜(倭)와 활발히 교류하며 동아시아 문물의 중계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왕 13년(612년), 백제 사람 미마지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찍이 중국 남조의 오(吳) 지역—양쯔강 하류 강남 일대—에서 가면 무용극 기악을 배운 인물이었다. 일본에 도착한 그는 사쿠라이에 자리를 잡고 소년들을 모아 기무(伎舞)를 가르쳤으며, 이것이 훗날 일본 왕실과 사찰의 의례 예능으로 정착했다.
“백제인 미마지가 귀화하였다. 그는 오(吳)에서 배워 기악무를 익혔다고 하였다. 이에 사쿠라이에 살게 하고 소년들을 모아 기악무를 배우게 하였다.”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수(隋)가 막 무너지고 618년 당(唐)이 들어서는 격변기. 미마지가 배운 남조 강남 예능은 이미 옛 왕조의 유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 유럽/중동
비잔틴제국은 헤라클리우스 황제(재위 610~641년)가 페르시아와 사투를 벌이던 시기였고,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610년 무렵 이슬람의 첫 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 일본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국가 통치의 축으로 세우던 시기. 미마지의 기악은 바로 이 불교 진흥 정책과 정확히 맞물려 받아들여졌다.
[이미지: 강남(오)에서 배운 기악이 백제를 거쳐 사쿠라이로 전해진 경로, 612년]
⚔️ 그날의 현장
“횃불이 사쿠라이의 공터를 밝힌다. 나무 가면을 쓴 사내가 북소리에 맞춰 몸을 낮췄다 솟구친다. 오공(吳公)의 익살스러운 걸음, 뒤이어 나타나는 금강역사의 위압적인 도약. 둘러선 왜국 소년들의 눈이 횃불보다 더 반짝인다.”
“공연이 끝나자 미마지는 가면을 벗지 않은 채 소년들 손에 그것을 하나씩 쥐여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기악은 원래 대사 없이 몸짓만으로 전하는 무언극이었으므로.”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기악은 사자(師子)를 앞세운 행렬을 시작으로 오공(吳公)·오녀(吳女)·금강(金剛)·가루라(迦樓羅)·곤륜(崑崙)·역사(力士)·바라문(波羅門)·취호왕(醉胡王) 등 십수 가지 배역이 차례로 등장하는 가면 무언극이었다. 불교의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풀어내, 글을 모르는 대중도 교리를 눈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포교 도구였다.
그 실체는 오늘날 일본 나라의 호류지(法隆寺)와 도다이지(東大寺), 왕실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 남은 7~8세기 기악 가면 실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가면들의 이국적인 얼굴 생김새는 백제를 거쳐 중앙아시아·인도까지 이어지는 문화 전파의 폭을 그대로 보여준다.
백제 자체의 음악 수준을 보여주는 물증도 있다. 부여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완함(비파류), 종적(피리), 배소(팬플루트류), 북, 현악기를 연주하는 다섯 악사상이 새겨져 있다. 서역 악기와 중국계 악기가 뒤섞인 이 조합은 백제가 이미 국제적인 궁정 음악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 미마지가 남의 나라 예능을 그저 옮긴 것이 아니라, 백제라는 문화적 용광로를 거쳐 재구성한 것에 가까웠던 이유다.
시대
7세기 초, 무왕 13년(612년)
핵심 인물
미마지(味摩之)
핵심 사건
기악무 일본 전수
영향
나라·헤이안 왕실·사찰 공연예술 형성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미마지는 남조 강남(오) 지역의 산악·백희(百戱) 계통 가면극을 배워 백제화한 뒤 일본에 전한 ‘문화 중계자’였으며, 기악은 백제 궁정과 사찰이 이미 보유하던 국제적 공연 문화의 연장선에 있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대안적 견해
일각에서는 미마지가 ‘오(吳)’에서 배웠다는 기록을 근거로 그를 도래계 중국인 혹은 백제에 거주하던 오(吳) 출신 이주민으로 보기도 한다. 국적 논쟁과 별개로, 백제가 그 전수의 발판이었다는 점은 대부분의 연구가 공유한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기악은 일본에서 나라 시대(710~794년)에 크게 흥성하다가, 헤이안 시대에 궁정 취향이 바뀌면서 서서히 쇠퇴해 가마쿠라 시대 무렵에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러나 그 흔적—가면과 기록—은 천수백 년을 건너 남았고,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만 백제 음악의 국제적 위상을 역으로 복원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K-POP 안무팀의 칼군무와 화려한 무대 연출에 열광한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낯선 땅에 정착해 현지인에게 몸짓과 리듬을 가르쳤던 무명의 백제 예능인이 있었다.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현지에서 뿌리내리게 하는 방식—사람을 직접 가르쳐 재생산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1,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 구분 | 백제 시대 | 현재 |
|---|---|---|
| 전파 방식 | 악사가 직접 건너가 현지인을 도제식으로 교육 | 디지털 플랫폼·챌린지를 통한 실시간 확산 |
| 전달 매체 | 가면과 몸짓의 무언극 | 안무·비주얼·숏폼 영상 |
| 문화/정신 | 불교 교리를 몸짓으로 전하는 포교 예능 | K-Culture의 전 세계 공연예술 확산 |
[이미지: 가면 무용극에서 오늘날 군무 무대로 이어지는 공연예술의 계보]
📚 더 깊이 알아보기
-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백제금동대향로의 다섯 악사상 실물 — 향로 정상부에서 완함·종적·배소·북·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악사들의 표정까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 일본 쇼소인(正倉院)에 전하는 7~8세기 기악 가면 실물 — 오공·가루라·취호왕 등 이국적 얼굴의 나무 가면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 2002년 국립국악원이 복원 공연한 ‘기악’ 무대 — 1,300년 단절되었던 백제계 가면극을 현대 무대 위에 되살린 시도.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자기 나라 기록에는 남지 않았어도, 건너간 자리에서는 천 년 넘게 기억되었다. 문화의 힘은 기록의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멀리,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가로 증명된다.
“가면 뒤의 얼굴은 잊혀도, 가면이 남긴 춤사위는 남는다.”
이전 편
제14화: 백제의 건축 – 일본에 전해진 기술
다음 편
제16화: 백제의 과학기술 – 천문과 의학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 2025 The Korean Today. All rights reserved.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