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의 역사는 성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커지고 확장된 도시가 다시 경계를 조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 역시 구로의 중요한 역사다. 구로구청 연혁에 따르면 1995년 3월 1일 금천구가 신설되면서 독산동, 시흥동, 가리봉 일대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됐다. 이는 행정구역 조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 변화였다. 한때 광범위한 산업지대를 포함하던 구로는 이 분구를 계기로 도시의 크기와 산업 기반, 생활권 구조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전환점에 놓였다.
구로구청의 1990년대 후반기 자료는 이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자료에 따르면 1995년 분구 이후 구로구의 도시 면적은 32.55㎢에서 20.269㎢로 축소됐고, 국가산업단지인 구로공단 일부도 금천구로 편입되면서 준공업지역 비중에도 변화가 생겼다. 도시의 경계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지 면적의 감소가 아니라, 기존 성장 축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구로는 이 시기부터 과거의 대규모 공업지 중심 구조를 넘어서 보다 복합적인 도시 체계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으로 읽힌다.
도시계획 역시 새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구로구청의 도시계획 변천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구로는 금천구 분구와 함께 도시기본계획 수립, 상세계획구역 지정, 풍치지구 변경과 최고고도지구 신설 등 도시관리 체계를 본격적으로 조정해 나갔다. 이는 행정구역 변화에 맞춰 토지이용과 생활권, 산업지와 주거지의 관계를 새롭게 설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즉 분구 이후의 구로는 단순히 축소된 도시가 아니라, 스스로의 구조를 다시 정비해 나가는 도시였다.
![]() [코리안투데이] (사진) 1990년대 개봉동 모습 © 박수진 기자 |
인구 흐름에서도 변화는 분명했다. 구로구청 ‘주거, 인구, 산업’ 자료에 따르면 구로구는 1995년 3월 분구 당시 38만1천 명 규모로 출발했으며, 1997년 말에는 신도시 이전 추세로 인해 37만5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후 공장 이전과 재개발에 따른 아파트 입주가 이어지면서 인구는 다시 증가했고, 2019년 말에는 406,664명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타났다. 이는 구로가 단지 일하러 오는 산업지에서 머무르고 살아가는 생활도시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흐름이다.
구로의 생활도시화는 신도림과 개봉, 오류, 고척 등 각 생활권의 확장과도 연결된다. 특히 신도림동은 구로구청 동별 역사 자료에서 조선시대 자연부락에서 출발해, 1949년 서울 행정구역 확장 당시 기존 도림리와 구분하기 위해 ‘신도림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설명된다. 이후 오늘의 신도림은 교통과 주거, 상업 기능이 결합된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구로는 공단 중심의 기억만 남은 곳이 아니라, 역사적 동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의 현재를 만들어온 공간이기도 하다.
분구 이후의 구로는 상실보다 재편의 역사에 가깝다. 일부 산업지와 면적을 떼어내고도 구로는 스스로의 축을 새롭게 세웠다. 과거의 공업도시라는 강한 정체성 위에 주거와 상업, 교통과 생활 인프라가 더해지며, 구로는 보다 입체적인 도시로 변모해 왔다.
![]() [코리안투데이] (사진) 1990년대 구로구 개봉동 모습 © 박수진 기자이메일 : guro@thekoreantoday.com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