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간병살인자가 되는 사회…“더 늦기 전에 간병제도 혁신해야”

 

지난달, 이른바 ‘대구 간병살해청년’으로 알려진 20대 남성이 가석방됐다. 그는 심부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1년간 집에서 돌보다가 결국 방치해 숨지게 했고, 존속살해 혐의로 복역했다. 3년간 모범수로 지낸 그는 사회로 돌아왔지만, 그가 남긴 충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간병살인’이라는 사회적 비극과 마주하고 있다. 대구시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전국적으로도 고령 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간병에 지친 가족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환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월, 15년간 아버지를 돌본 50대 아들은 결국 부친과 함께 생을 마감했고, 2023년 10월에는 1급 장애 아들을 40년간 간병하던 60대 부모가 그를 숨지게 했다.

 

 [코리안투데이] 간병 © 한지민 기자

박숙완 경상대 법학과 강사의 연구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확인된 간병살인 사건은 213건. 이 중 무려 절반 이상인 53.5%가 가족에 의한 범행이었다. 간병인을 포함한 돌봄 제공자가 환자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경우도 89건이나 된다. 이 수치는 단순한 범죄 통계를 넘어, 사회적 경고음이다.

 

문제의 핵심은 ‘기약 없는 돌봄’에 있다. 치매, 뇌병변, 퇴행성 질환 등은 호전이 어렵고 장기적인 간병이 요구된다. 전문 인력을 쓰자니 하루 수십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는 가계에 치명적이다. 보호자가 퇴직하거나 생계를 포기한 채 간병에 매달리는 ‘간병 퇴사’는 이제 낯설지 않은 용어다. 이처럼 간병은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병드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25년을 기점으로 간병문제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전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병동에서 상시 간병을 맡도록 하여 가족 간병의 부담을 덜자는 취지다. 특히 중증 환자 전담 병실을 신설하고, 야간전담 간호조무사제 도입으로 24시간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더불어 요양병원 간병 지원 시범사업도 2024년부터 시작되었으며, 2027년부터는 본사업 전환이 예정되어 있다. 퇴원 이후에도 환자가 안정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재택의료·간병 통합 시스템도 함께 도입되고 있다.

 

요양병원 간병 모델 논의와 잇따른 간병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더 이상 간병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의 심화 속에서 존엄한 노년과 건강한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간병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요양병원이 본연의 의료 기능을 회복하고, 가족 간병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마련을 통해 우리 사회는 더욱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간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 절박한 외침에 이제 우리 사회는 응답해야 한다.

 

국제유활의학회 이진주 회장은 “사회적 제도의 부재가 만든 비극을 개인의 잘못으로만 몰아서는 안 된다”며 제도적 개입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가족이 환자를 죽이는 나라,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간병은 이제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다. 고령사회에서의 존엄한 삶을 위해, 우리는 지금 간병제도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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