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종훈, ‘콘크리트 마켓’ 화면해설 재능기부…영화 접근성의 경계를 넓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식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화면을 온전히 볼 수 없는 관객, 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없는 관객도 같은 시간과 흐름 안에서 영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접근성 기술과 콘텐츠가 점차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배우 윤종훈이 영화 ‘콘크리트 마켓’의 화면해설(Audio Description) 내레이션에 재능기부로 참여하며 영화 접근성 확대에 힘을 보탰다.

 

[코리안투데이] 배우 윤종훈
(사진=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 변아롱 기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24일 윤종훈이 영화 콘크리트 마켓 화면해설 내레이션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업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추진되는 한글자막·화면해설 제작 및 상영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해당 사업은 복권위원회 복권기금을 재원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추진되고 있으며, 화면해설 제작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한글자막 제작은 한국농아인협회가 각각 맡았다.

 

‘콘크리트 마켓’은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 단지에 형성된 ‘황궁마켓’을 배경으로 한다. 재난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물건을 사고파는 새로운 거래 시스템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충돌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재난 이후의 사회 질서, 공동체의 윤리, 생존을 둘러싼 선택을 밀도 있게 그려낸 설정은 한국 독립영화계에서도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아 왔다.

 

윤종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화면해설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그는 영화가 담고 있는 재난 이후 공동체에 대한 메시지와 화면해설이 지닌 사회적 의미에 공감해 재능기부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면해설은 장면 전환, 인물의 행동, 공간의 변화 등을 음성으로 설명해 시각장애인 관객이 영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설명을 넘어, 이야기의 리듬과 감정을 해치지 않는 전달력이 중요하다.

 

윤종훈은 “화면해설은 장면을 설명하는 작업이기보다 영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느꼈다”며 “보이지 않는 관객도 같은 이야기의 흐름 안에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녹음에 임했다”고 밝혔다. 감정을 과도하게 덧입히기보다, 관객이 스스로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기는 방식에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화면해설 대본 집필과 녹음 현장 디렉팅을 맡은 조현아 작가(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윤종훈의 작업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윤종훈 배우는 화면해설이 필요한 지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감정 표현보다는 장면의 흐름과 정보 전달의 균형을 세심하게 조율했다”며 “작품을 존중하는 태도가 녹음 전반에서 일관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이번 화면해설·한글자막 동시 제작 사업은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제도적으로 확대하려는 시도의 하나다. 그동안 장애인 접근성 콘텐츠는 별도의 상영회나 제한된 플랫폼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상용 VOD 서비스로 유통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콘크리트 마켓’ 화면해설 버전 역시 가치봄 VOD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유료로 제공되며, 지니TV, KT Skylife, LG U+, SK Btv, 케이블TV VOD 등 주요 유료 방송·통신 플랫폼에서 감상할 수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배우와 창작자가 직접 접근성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유명 배우의 참여는 단순한 홍보 효과를 넘어, 화면해설과 자막 제작이 ‘특별한 배려’가 아닌 영화 제작의 기본 요소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접근성 버전 동시 개봉이 점차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례는 장애인 영화 접근성 정책과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결합한 사례로 평가된다. 복권기금과 공공기관 지원을 통해 제작 기반을 마련하고, 배우의 재능기부로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시에 접근성 콘텐츠가 ‘무료 배포’에 머무르지 않고 정식 유통망을 통해 제공된다는 점은, 장애인 관객을 동등한 문화 소비자로 인식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를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누구와 함께 나누느냐다. 화면해설 내레이션에 참여한 윤종훈의 이번 선택은, 한 편의 영화가 더 많은 관객에게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다. 접근성은 부가 요소가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라는 인식이 확산될 때, 영화는 비로소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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