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의미가 재편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 2024~2025년을 기점으로 하이브의 KATSEYE, JYP의 VCHA, SM의 디어 앨리스처럼 대형 기획사가 해외 현지에서 육성한 그룹들이 빌보드와 오리콘 등 주요 차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국적과 언어, 심지어 멤버 구성의 혈통적 연속성이 흔들리는데도 시장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K-POP의 확장판’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K-POP은 한국인 아티스트의 목록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설계되고 생산된 결과물을 가리키는 표지가 되어가고 있다.
![]() [코리안투데이] HYBE의 소속 KATSEYE의 6명 글로벌 멤버. 필리핀의 Sophia, 스위스의 Manon, 미국의 Daniela, Lara, Megan, 한국의 Yoonchae(사진제공: Know about KPOP) ⓒ 박찬두 기자 |
![]() [코리안투데이] JYP Entertainment와 Republic Records(협업)의 글러벌 공동 체제로 운영되는 VCHA 6명 멤버들. 캐나다의 Camila, 미국의 Lexi, Kendall, Kaylee, KG, Savanna(사진제공: kpopnews) ⓒ 박찬두 기자 |
![]() [코리안투데이] SM 소속 영국 출신 디어 앨리스의 James Sharp, Dexter Greenwood, Olly Quinn, Reese Carter, Blaise Noon(사진제공: ohmynews) ⓒ 박찬두 기자 |
상징적인 사례로 미국 현지화 그룹 캣츠아이(KATSEYE)는 데뷔 1년 만에 빌보드 200 상위권에 진입하며 존재감을 증명했다. 한국인 멤버가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결정적 변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K-POP 특유의 칼군무와 퍼포먼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적 문법으로 소비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여기서 칼군무는 동작의 각도와 타이밍을 칼날처럼 정밀하게 맞추는 집단 안무를 뜻하고, 퍼포먼스는 단순 라이브를 넘어 안무·표정·카메라 동선까지 포함한 종합 연출을 의미한다. 관객이 ‘노래’만이 아니라 ‘제작된 경험’을 구매하는 구조가 굳어진 셈이다.
![]() [코리안투데이] 미국 현지화 그룹 캣츠아이(KATSEYE)(사진제공: delivered) ⓒ 박찬두 기자 |
언어의 경계도 느슨해졌다. 영어 가사 속에 한국어 추임새(곡의 흥과 리듬을 살리는 짧은 구호·감탄사)를 섞거나, 해외 시상식 무대에서 한국어 곡을 가창하는 방식으로 ‘K-POP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한국어가 ATSEYE)세계 대중음악의 주류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한국어가 ‘K-POP 문법을 인증하는 사운드 로고’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즉, 언어는 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브랜드의 질감이 된다.
이 흐름의 핵심 원인으로는 ‘아티스트 개인’보다 ‘육성 프로세스’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K-POP의 강점은 타고난 재능의 발견보다, 재능을 제품으로 변환하는 공정에 가깝다. 연습생 기간 동안 보컬·댄스·인성 교육이 체계적으로 결합하고, 여기에 A&R(Artists and Repertoire, 아티스트 발굴·곡 선정·콘셉트 기획을 총괄하는 기능)과 트레이닝이 한 몸처럼 맞물린다. 또한 고도로 기획된 세계관(Narrative, 음악·뮤직비디오·무대·팬 커뮤니티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는 설정)이 팀의 정체성을 미리 설계한다. 서구권 팝 시장이 상대적으로 ‘개별 아티스트 중심의 자율 제작’에 무게를 두어온 것과 대비되면서, 이 제작 양식은 오히려 신선한 산업 표준으로 부상했다.
자본과 유통의 결합도 결정적이다. 한국 기획사의 기획력·훈련 시스템에 유니버설 뮤직 같은 글로벌 레이블의 유통망과 로컬 마케팅이 붙으면, ‘리스크는 줄이고 성공 확률은 높이는’ 비즈니스 모델이 된다. 현지 멤버로 구성하면 언어·문화 장벽을 낮추고, 동시에 K-POP 제작 공정을 투입해 완성도와 팬덤 빌딩 방식을 표준화한다. 결과적으로 “현지의 얼굴을 가진 K-POP”이 탄생하고, 이는 진출이 아니라 침투에 가까운 확산 경로를 만든다.
![]() [코리안투데이] 캣츠아이의 무대 모습(사진제공: ‘쇼! 음악중심’, MBC) ⓒ 박찬두 기자 |
전문가들의 시각은 ‘K-POP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K-POP은 이제 인종적 경계를 넘어 ‘제작의 양식’이 되었다. 마치 재즈가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전 세계 어디서든 연주되듯, K-POP도 하나의 보편적 장르가 된 것”이라는 취지로 진단한다. K-POP이 지리적 기원에서 출발했으나, 현재는 재현 가능한 양식으로 표준화되어 복제·확장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도 결을 같이한다. “한국인이 없는 K-POP 그룹의 성공은 K-문화의 ‘제국주의적 확장’이 아니라 ‘플랫폼화(기반화)’를 의미한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스타를 만드는 ‘종가집’이자 ‘파운드리(생산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서 플랫폼화는 특정 국가의 문화가 타 문화를 지배한다는 도식이 아니라, 제작·훈련·콘텐츠 운영·팬덤 관리의 표준을 제공하는 ‘산업 플랫폼’으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산업에서 주문에 따라 생산을 맡는 제조 모델을 가리키는데, 이 비유는 한국식 제작 시스템이 ‘글로벌 스타 생산 공정’으로서 외부 수요를 흡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는 2026년 이후 더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남미·중동 등에서 현지 멤버로만 구성된 K-POP 그룹이 등장해 각 지역의 로컬 음악 시장을 흡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한국 음악의 수출’이라기보다 ‘한국식 제작 규격의 이식’에 가깝다. 로컬 언어와 리듬, 지역별 스타 시스템을 존중하되, 팬덤 운영·콘텐츠 릴리스 주기·퍼포먼스 중심의 무대 문법 같은 핵심 규격은 K-POP 방식으로 표준화되는 구조다.
![]() [코리안투데이] AI 안무가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동작 조합하여 창작에 도움을 주고 무대 연출에도 활용될 수 있다.(사진제공: sisunnews) ⓒ 박찬두 기자 |
기술과의 결합도 관전 포인트다. AI 트레이너가 실시간으로 현지 연습생의 안무를 교정하고(동작 정확도·각도·중심 이동을 영상 기반으로 분석해 피드백), 한국의 프로듀서들이 메타버스에서 이들을 지도하는 ‘비대면 인큐베이팅(육성)’이 보편화될 수 있다. 비대면 인큐베이팅은 물리적으로 한국에 모이지 않아도 동일한 훈련 품질과 제작 지휘를 구현하는 모델을 뜻한다. 그 결과, 한 도시의 연습실이 아니라 전 세계 분산된 스튜디오가 하나의 공정으로 연결되고, K-POP은 ‘장소’에서 떨어져 나온다.
결국 ‘푸른 눈의 아이돌’은 예외가 아니라 징후다. K-POP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은 더 이상 혈통이나 국적에 기대지 않는다. 기획과 훈련, 세계관과 퍼포먼스, 유통과 팬덤 운영까지를 한 번에 묶는 시스템 즉 K-인큐베이팅이 K-POP을 K-POP이게 만든다. ‘K’는 국가를 가리키는 접두사에서, 재현 가능한 제작 표준을 뜻하는 산업적 표식으로 이동 중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차트와 무대 위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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