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과 국민연금 개혁은 수년째 논의돼 온 과제지만, 정작 이를 둘러싼 시민 공론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는 주로 전문가와 정책 결정자 중심으로 설계돼 왔고, 시민은 변화의 결과를 통보받는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년과 연금 문제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 모든 국민의 생애 설계와 직결된 사안이다. 공론 없는 제도 개편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 [코리안투데이] 정년연장과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 시민 공론의 장 마련된 AI 가상 모습 © 임희석 기자 |
문제의 출발점은 제도의 복잡성이다. 정년은 근로기준법과 고용 정책의 영역이고, 국민연금은 사회보험 제도다. 여기에 저출산과 고령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맞물리면서 설명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 결과 시민들은 “정년을 늘리면 좋은 것 아니냐”거나 “연금을 조금 늦게 받으면 되는 문제 아니냐”는 단순한 인식에 머물기 쉽다.
하지만 현실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에 머물러 있는 반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상향됐다. 이로 인해 다수의 국민은 퇴직 이후 연금을 받기까지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을 겪게 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년연장, 연금개혁, 재정 안정에 대한 어떤 논의도 시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공론화의 첫 단계는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출생연도별로 언제 퇴직하고 언제 연금을 받게 되는지, 그 사이 몇 년의 공백이 발생하는지를 생활 언어와 시각 자료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제도 설명이 아니라 ‘내 이야기’로 인식될 때 비로소 공론은 시작된다.
두 번째는 선택지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정년연장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여러 대안 중 하나다. 정년을 단계적으로 올릴 것인지, 연금 수급을 일부 앞당길 것인지, 중간 소득보전 장치를 마련할 것인지에 따라 부담 주체는 달라진다. 정부, 기업, 개인 중 누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 시민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세 번째는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태도다. 정년연장은 청년 고용, 기업 부담, 세대 형평성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동반한다. 이를 덮은 채 ‘상생’만을 강조하면 오히려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공론화는 갈등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해외에서는 연금과 노동 개혁 과정에서 시민 패널이나 숙의형 공론조사를 활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해관계가 다른 시민들이 같은 테이블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여러 정책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한국 역시 일방적인 정책 발표를 넘어, 시민이 제도의 방향을 함께 결정하는 구조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정년과 연금 문제는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삶의 후반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모든 시민의 질문이다. 정년연장과 연금개혁을 둘러싼 공론화는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해법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임희석 기자: gwanak@thekorean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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