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속 녹아내린 얼음 한 조각, 곰 인형 태디가 지킨 가족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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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곰 인형 태디는 정전으로 녹아내리는 푸른 얼음 조각 앞에서 가족의 기억을 지키려고 나무늘보와 연어 인형을 불러 모은다. 윤강후 작가의 신작 그림동화 <곰 인형 태디와 친구들>은 사랑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물컵 하나를 채워 주는 손길 속에 오래 머문다는 사실을, 이 여름밤 이야기 하나로 되짚는다.

국내 창작 그림동화 시장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인형이나 동물 캐릭터를 내세운 판타지 서사와 가족 정서를 결합한 작품이 꾸준히 늘어 왔다. 해외 그림책 시장에서도 인형을 매개로 상실과 기억, 돌봄을 다루는 이야기가 저학년 독자층을 겨냥해 활발히 출간되는 흐름이 확인된다. <곰 인형 태디와 친구들>은 이 흐름 위에서 ‘기억’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을 얼음이라는 구체적 사물로 바꿔, 어린 독자가 추상적 감정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도록 짓는다. 정전이라는 익숙한 일상의 사고가 이야기의 방아쇠가 된다는 설정도, 특별한 모험 없이도 서사를 끌고 가는 최근 그림동화의 화법과 맞닿아 있다. 전자책 형태로 먼저 선보이는 창작 그림동화가 늘어나는 것도, 접근성을 높이려는 최근 출판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코리안투데이] 신간 《곰 인형 태디와 친구들》 표지 © 코리안투데이 편집국국내 그림동화 시장은 대형 출판사가 찍어 내는 종이책 중심으로 서점 매대를 채워 왔다. 개인 저자가 교실에서 쌓은 이야기를 곧바로 독자에게 건네는 통로는 상대적으로 좁았다. <곰 인형 태디와 친구들>은 PDF 전자책으로 나와, 유통 단계를 줄이고 저자와 독자 사이 거리를 좁히는 자가출판 구조를 택했다. 정가 5,000원이라는 접근성도 이 구조에서 나온다.

이 책의 쓸모는 거실에서 확인된다. 태디가 발견한 ‘기억 얼음’은 아이와 부모가 그날 하루를 되짚어 보는 질문으로 바뀐다. 오늘 물컵을 채워 준 사람은 누구였는지, 말없이 챙겨 준 손길은 무엇이었는지 되묻는 대화가 책장 사이에서 열린다. 다 읽은 뒤 남는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그 질문 하나다.

저자는 이미 <마음을 지키는 멋진 방법, 거절>과 <책나래 사서선생님과 꿈나래 도서관의 세 가지 소리>를 통해 교실에서 검증한 이야기를 책으로 옮겨 왔다. 태디와 나무늘보, 승죽 연어님이 이번 한 권으로 끝날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인형 하나하나에 이름과 성격을 붙여 온 방식을 보면, 세 캐릭터의 다음 행보를 지켜볼 이유는 남아 있다.

저자 윤강후는 교육 현장에서 오랜 시간 학생들과 호흡하며 교장으로 퇴직했다. 수업의 본질을 탐구해 이야기 중심 수업과 창의융합 교육을 연구해 왔고, AI를 활용한 그림동화 수업을 개발해 학생 참여도와 몰입도를 높이는 교육 방법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 여러 교원 연수와 강의를 통해 현장 교사들과 경험을 나누며,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수업 설계를 제안해 왔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지부장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앞서 <마음을 지키는 멋진 방법, 거절>, <책나래 사서선생님과 꿈나래 도서관의 세 가지 소리>, <얼렁뚱땅 방학 계획표 짜기>를 펴낸 바 있다.

책은 ‘저자 소개’, ‘곰 인형 태디와 친구들’, ‘작가의 말’ 세 장으로 짜여 있다. 주인공 태디는 연한 갈색 조끼에 에메랄드빛 목걸이를 두른 곰 인형이다. 긴 팔을 가진 나무늘보가 단짝을 맡고, 헤엄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승죽 연어님이 세 번째 자리를 채운다. 이야기의 무대는 한여름 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냉동실 속 얼음이 녹아내리는 순간이다. 그 얼음에는 할머니가 짜 준 모시 천 위에서 피어난 가족의 평범한 하루들이 담겨 있고, 세 인형은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지키려고 힘을 모은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시간을 넘기지 못하면 기억이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느슨한 판타지가 아니라 팽팽한 서사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전통 소재인 모시 천을 판타지적 장치로 끌어들인 점이 이야기에 토속적인 결을 더한다.

미리보기 원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두 잠든 한여름 밤, 곰 인형 태디는 냉동실 아래에서 파르르 떠는 푸른 얼음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별처럼 깜박이던 얼음에 손을 대자 따뜻한 아침 식탁이 나타났습니다.’ 아빠가 엄마의 물컵을 채우고, 누나가 동생의 물컵을 말없이 챙기는 장면은 이 책이 말하려는 ‘작은 행동 속의 사랑’을 한 컷으로 압축해 보여 준다.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문장 구조는 초등 저학년 독자가 혼자 읽기에도, 부모가 옆에서 소리 내어 읽어 주기에도 무리가 없다. 가족·배려·우정을 주제로 한 협동 서사라는 점에서 독서 지도 현장에서도 활용 폭이 넓다.

그림동화 창작 현장에서는 AI 도구를 활용한 삽화·서사 개발이 점차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윤강후 작가가 교육 현장에서 다져 온 AI 활용 수업 경험이, 캐릭터 설정과 장면 구성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흔적이 읽힌다. 교실에서 검증한 이야기 창작 방식을 독립된 창작물로 옮겨 온 사례라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 궁금증은 정전 속에서 세 인형이 지켜낸 기억을 아침에 깨어난 가족에게 어떻게 되돌려 줄지에 있다. <곰 인형 태디와 친구들>은 8월 1일 WIA Book을 통해 전자책(PDF) 형식으로 나온다. 저자는 윤강후, 정가는 5,000원이다. 도서 상세 정보와 구매는 위아북 홈페이지(https://wiabook.com/books/gom-inhyeong-taediwa-chingudeul-ko/)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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