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시인 인터뷰|『손톱 끝에 걸린 세상』, 상실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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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기록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박은선 시인에게 시는 조금 더 절실하다.

 

그에게 시와 글은 “상실의 바다에서 담아내는 심장이며 살아있음의 강한 긍정”이다.

 

삶의 한순간에 찾아온 두 눈의 위태로움과 암흑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그를 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했던 여행에서 시작된 자연에 대한 감각, 가족에 대한 사랑, 살아가는 동안 마주한 상실과 두려움은 그의 시 안에서 다시 희망의 언어가 된다.

 

 [토리안투데이] 박은선 시인 “상실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시, 살아있음의 강한 긍정”  © 김현수 기자

 

다섯 번째 시집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을 펴낸 박은선 시인을 만나 시인이 된 계기와 그의 작품세계, 시낭송과 음악, 그리고 AI 시대에 인간이 쓰는 시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암흑의 두려움이 저를 시인이 되게 이끌었습니다”

 

박은선 시인의 문학적 출발점에는 어린 시절의 여행과 자연이 있다.

 

그의 부모는 젊은 시절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자녀들이 어렸을 때면 일요일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곤 했다. 어린 시절 몸에 밴 여행의 습관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여행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틈틈이 메모장에 적었다.

 

그러나 그 기록들이 본격적으로 ‘시’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삶의 위기가 있었다.

 

약 9년 전, 두 눈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수술을 경험했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박 시인은 그 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암흑의 두려움이 저를 시인이 되게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는 눈 수술을 앞두고 문단에 등단했다. 역설적으로 자신을 시의 세계로 이끈 두 눈은 수술을 잘 마쳤고, 현재는 정기적으로 시술을 받으며 관리하고 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시인을 만들었지만, 그의 시가 머무르는 곳은 어둠만이 아니다.

 

 박은선 시의 뿌리, 자연과 가족 사랑

 

박은선 시인에게 지금도 시를 쓰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짧고 분명하다.

 

“자연과 가족 사랑입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여행하며 바라본 풍경과 자연, 사람에 대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의 문학적 자양분으로 남아 있다.

 

일상 속에서 시를 발견하는 방법 역시 특별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듣다가 문득 가슴을 치는 한 문장을 발견하면 메모한다. 자연이 스치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깜짝 놀랄 문장들이 들리는 순간 메모를 해요. 또 자연의 스삭거리는 소리에서 영감이 떠오르는 시적 순간이 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말 한마디와 작은 자연의 소리가 시인에게는 한 편의 시가 시작되는 순간이 된다.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이 말하는 것은 ‘희망’

 

 [코리안투데이] 박은선 시인 “상실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시, 살아있음의 강한 긍정”  © 김현수 기자

 

박은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을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고른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희망’이라고 말한다.

 

삶에서 고뇌의 순간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사의 날 역시 환희처럼 찾아온다.

 

박 시인은 삶의 양면을 바라보면서도 결국 빛을 이야기한다.

 

“고뇌의 순간이 없을 순 없겠죠. 또 감사의 날도 환희처럼 있습니다. 양면의 날 어느 때라도 하늘빛을 향해 손을 내밀어보세요. 손끝끼리 맞닿을 때 만나는 작은 빛이 얼마나 많은 행복의 파편을 발산하는지요.”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이라는 제목과도 맞닿는 대목이다.

 

거대한 희망이 아니라 손끝에서 겨우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빛. 그러나 그 빛 하나에서 수많은 행복의 파편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박은선 시인이 바라보는 삶의 한 모습이다.

 

 “나는 여전히 상실의 바다를 건져 올리는 중입니다”

 

이번 시집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박은선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여전히 상실의 바다를 건져 올리는 중입니다.”

 

‘상실의 바다’는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말이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서 그는 바다를 직접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살아가는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과 경험의 밀도를 시로 승화시키는 데 더욱 집중했다.

 

“직설적인 바다 묘사보다는 사는 곳에서의 밀도를 시로 승화시키는 데 감정 몰입에 충실했습니다.”

 

그의 시에서 바다는 하나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삶의 은유가 된다.

 

상실과 희망, 삶과 죽음, 아픔과 감사가 서로 마주하는 공간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뛰고 있는 ‘심장’

 

박은선 시인이 지속해서 바라보는 시적 주제는 무엇일까.

 

그는 “삶과 죽음의 대립에서의 뛰는 심장”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의식하기 때문에 삶이 더욱 선명해지고, 상실을 경험하기 때문에 살아 있음이 더욱 절실해지는 역설이다.

 

그래서 그에게 시는 아름다운 언어를 만드는 기술 이전에 ‘절실함’에서 출발한다.

 

“절실함이 있어야 해요. 영혼이 닿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

 

그는 좋은 시의 조건으로 자신의 시를 향한 애정도 강조한다.

 

현실 속에서 시를 쓰는 만큼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시의 방향은 명확하다.

 

“정직한 시, 포장이 없는 시.”

 

화려한 수사로 감정을 감추기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감정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것이 박은선 시인이 지향하는 시다.

 

 “듣는 시, 보는 시, 읽는 시…결국 모두 가슴에서 옵니다”

 

박은선 시인의 문학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영역은 시낭송이다.

 

그는 시를 눈으로 읽는 것과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을 완전히 별개의 작업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의 소리는 노래가 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게도 합니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문자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힘이 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결국 같은 곳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듣는 시, 눈으로 보는 시, 소리 내어 읽는 시는 모두 가슴에서 올라와 입을 지나 귀로 옵니다.”

 

때문에 박 시인에게 시쓰기와 낭독은 하나로 연결된다.

 

“시쓰기와 낭독은 하나이기에 내 감정이 진실하면 차이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실한 감정으로 쓴 시라면 목소리를 통해 전달될 때에도 그 진실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시가 음악을 만나면 ‘또 다른 완성’이 된다

 

박은선 시인은 시와 음악이 만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시와 노래는 멀리 떨어진 예술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때로는 노래가 되어 불렸다.

 

박 시인은 시가 자연스럽게 노래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다.

 

“건반 위에 음표를 놓고 물결치듯 멜로디 위에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또 다른 완성도를 느낍니다.”

 

글자로 존재하던 시어가 음표와 만나고, 다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순간 시는 또 하나의 생명을 얻게 된다.

 

 빠른 시대에 오히려 ‘긴 호흡’을 택하다

 

▲ [코리안투데이] 자연과 가족에서 길어 올린 시어…빠른 시대에도 ‘정직한 시, 포장 없는 시’를 지키다  © 김현수 기자

 

지금은 짧은 영상과 빠른 콘텐츠의 시대다.

 

몇 초 안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판단하고 다음 콘텐츠로 이동한다.

 

박은선 시인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알고 있다. 그는 리처드 와이즈먼의 『59초』를 언급하며 순식간에 판단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오늘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조금 다르다.

 

“저는 쇼츠는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긴 소설을 낭독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긴 소설도 낭독을 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유로움을 더욱 길게 갖고 싶어서지요.”

 

모두가 짧아지는 시대에 그는 오히려 긴 문장과 긴 호흡, 오래 머무르는 시간을 택한다.

 

시를 읽는 일 역시 어쩌면 빠르게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한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AI가 시를 쓰는 시대, 인간 시인의 시는 어디에서 오는가

 

인공지능은 이미 글을 쓰고 시를 만드는 시대에 들어섰다.

 

박은선 시인 역시 AI가 가져온 편리함과 효율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AI가 편리함과 효율성에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을 떠올렸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인간의 내면과 성찰에 주목한다.

 

“우리 작가는 꾸준히 자신과의 성찰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 시인의 언어는 결국 가슴과 심장에서 시작한다.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심장 뛰는 글을 쓸 때 시인만이 탄생하는 시가 되겠지요.”

 

AI가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일수록 시인이 실제 삶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 때문에 아파하고, 무엇 때문에 가슴이 뛰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슬플 때 맘껏 바다에서 울어버리는 시인으로 기억해주세요”

 

다섯 번째 시집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을 펴낸 지금, 박은선 시인은 거창한 미래보다 현재의 ‘시적인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켜가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에 쓰고 싶은 ‘시적인 순간’을 지키며, 슬플 때 맘껏 바다에서 울어버리는 시인이 손톱 끝에서 찾아가는 세상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시에서 상실은 끝이 아니다.

 

상실의 바다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그것은 가족에 대한 기억이고 자연이 들려주는 작은 소리이며, 때로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이다.

 

그리고 손끝을 하늘빛으로 뻗었을 때 맞닿는 아주 작은 빛이다.

 

그 빛에서 수많은 행복의 파편을 발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박은선 시인이 시를 통해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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