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5권 · 제12장 · 저는 노원구 밥상에서 베이징 체스판까지 걸어가 보았습니다

Photo of author

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저는 몇 해 전 노원구의 한 다세대주택 2층 계단을 오르며, 초인종을 누르기 전부터 이미 반찬 냄새를 맡았습니다. 문을 연 것은 77세의 김씨 할머니였고, 그 뒤로 밥상을 차리다 말고 고개를 내민 것은 자취 2년 차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세입자와 집주인의 풍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시간이 한 식탁에서 맞물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만남에서 시작된 이야기, 「청년-노인 공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할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먹으면 반찬이 남고, 같이 먹으면 이야기가 남는다”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학생은 보증금 없이 월 20만 원가량을 냈고, 서울시는 도배와 장판, 방한 시공비로 최대 50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계약은 처음엔 한 학기였다가, 두 사람 모두 원해서 1년으로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연장의 순간이야말로 이 모델의 진짜 성공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관계를 이어가기로 선택한 순간이니까요.

이 만남을 통계로 옮겨보면 왜 지금 이런 실험이 필요한지가 더 선명해집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말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약 1,024만 명, 전체의 19.2%로 사상 처음 1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가운데 홀로 사는 어르신은 약 213만 명, 다섯 명 중 한 명꼴입니다. 반대편에서는 19~34세 청년 1인가구가 약 232만 가구에 이르는데, 수도권 원룸 평균 월세는 60만 원대로 청년 월 소득의 30%를 웃돈다고 합니다. 같은 도시 안에 ‘빈 방을 감당 못 하는 어르신’과 ‘방을 못 구하는 청년’이 나란히 존재하는, 조금은 이상한 모순을 저는 그 계단에서 직접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취재를 이어가며 저는 베이징 외곽의 한 양로원에서도 비슷한, 그러나 방향이 정반대인 풍경을 만났습니다. 28세 디자이너가 91세 어르신과 체스를 두며 월세를 깎던 곳이었지요. 중국의 설계는 한국과 달리 청년이 ‘노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양로원’으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2025년 발표된 《중국 은발 인거 발전 보고서》는 60세 이상 이로(已老) 3.1억 명과 40~60세 비로(备老) 4.3억 명을 합쳐 7.4억 명,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은발 주거 수요의 당사자라고 짚었습니다. 청년은 매달 최소 20시간의 독서 낭독이나 스마트폰 교육 같은 비의료 돌봄을 제공하는 대가로, 시세의 3분의 1 수준인 300~500위안의 월세만 냅니다. 한국이 ‘가족의 재구성’이라면, 중국은 ‘돌봄 인프라의 재설계’였습니다.

제가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오래 생각한 이유는, 결국 하드웨어의 차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차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은 어르신의 거실 문을 열었고, 중국은 양로원의 정문을 열었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나라 모두 같은 방정식 앞에 서 있었습니다 — 집은 남는데 돌봄은 모자라고, 청년은 돈이 없는데 사회적 자본은 노인에게 있다는 것. 저는 이 불균형을 메우는 다리가 정책이 아니라 매일의 밥상, 매달의 체스 한 판처럼 아주 작은 반복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제일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제 취재 노트에는 김씨 할머니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덧붙인 문장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처음엔 월세 몇 푼 벌자고 시작했는데, 요즘은 저 학생이 늦게 들어오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이 제도가 설계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순간이 언제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서류상으로는 임대차 계약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 계약서 바깥에서 자라난 것이지요. 베이징의 체스판 앞에서도 저는 비슷한 장면을 봤습니다. 91세 어르신이 젊은 디자이너의 취업 면접 결과를 저보다 먼저 궁금해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두 나라 모두에서, 정책이 만든 접점이 결국 정책보다 오래가는 관계로 넘어가는 지점을 목격한 셈입니다.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이 흐름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2030년이면 한중 양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합쳐서 4억 명에 가까워집니다. 중국은 이미 베이징·항저우·상하이 등에서 ‘대제융합(代际融合)’ 양로를 정책 의제로 끌어올렸고, 한국도 노원구를 시작으로 성북·서대문·광진·동대문 등 9개 자치구로 세대융합형 룸셰어링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복지 예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 공백을, 청년과 노인이 서로에게 내어주는 시간으로 메우려 하고 있는 셈입니다.

국민연금연구원 조사를 보면 한국 노인 1인가구의 절반 가까이가 월 소득 100만 원을 밑돈다고 합니다. 중국은 이른바 ‘9073’ 양로 구조 — 90%는 재가, 7%는 지역사회, 3%만 시설 돌봄에 의존하는 체계 — 를 국가 차원에서 밀고 있는데, 이 역시 결국 ‘집에서 누가 곁을 지켜주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저는 이 숫자들을 나란히 놓을 때마다,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문제를 풀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여러분이라면 그 곁을 지켜주는 역할을, 가족이 아닌 이웃에게도 내어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독자 여러분께 하나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효(孝)’를 여전히 감성적인 의무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월 20만 원과 20시간이 구체적으로 맞물리는 제도로 바꿔갈 것인지 말입니다. 저는 노원구의 그 밥상과 베이징의 그 체스판을 떠올릴 때마다, 세대는 단절이 아니라 자원이고 돌봄은 의무가 아니라 교환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거창한 해법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까운 이웃의 빈 방, 혹은 내가 가진 하루 중 한 시간을 떠올려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12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노원구의 45가구 매칭 사례부터 베이징·항저우 시범단지의 운영 구조, 그리고 두 나라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점까지 현장의 목소리로 풀어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WIA Code — 이 기사 링크
인쇄용 ·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확인
기사 바로 열기 ·
⇓ PNG 다운로드
WIA Family · 88개 언어 무료 학습 게임 — WIAver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