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몬 손중하의 ‘국화꽃 베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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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해운대

 

예산군의 모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3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는데 그 무렵 생활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서는 옥수수 죽을 끓여 아이들에게 주었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가정이 어려워 결식아동이 많다보니 정부에서 호구지책으로 옥수수 죽을 끓여 먹이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연재] 시몬 손중하의 ‘국화꽃 베개'(3)

 [코리안투데이] 몸져 누운 할머니와 함께 먹기 위해 죽을 가지고 가는 10살 짜리 아이(그림: chatGPT) © 임승탁 기자


지금 아이들이야 그런 죽을 먹지도 않을 터이지만 오히려 지나친 먹거리로 비만 어린이가 많아 걱정이라니 격세지감의 생각이 인다.

 

하루는 아이들이 각자가 준비한 죽 그릇에 죽을 퍼 주는데 한 아이가 먹지 않고 눈치만 보다가 죽 그릇을 슬그머니 치마폭에 감추더니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아이의 뒤를 쫓아가 보았더니 학교 뒤편 울타리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이 계속되어 알고 보니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할머니는 몸져 누운 상태였으니 그 뒷바라지를 이 아이가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죽을 혼자 먹을 수 없어 할머니와 같이 먹기 위하여 눈치를 보며 개구멍으로 빠져 나갔던 것이다.

 

 

이제 겨우 열 살짜리, 제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도 버거워 할 벅찬 아이가 할머니 시중을 그렇게 들다니 사람의 정의 무게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명랑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열 살짜리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른스러워 경이롭기까지 하다. 옷매무새도 단정하여 다복한 가정의 아이로만 보았으니 1.5의 시력도 심 시력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식물들은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열매를 달아 씨앗이 영글도록 하건만 어찌 스스로 매단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저런 자식을 두고 떠나며 눈을 감았을까. 사람이 제 앞길 보는 데는 식물만도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이 날전날에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빵을 가지고 왔다. 먹을 것을 보면 아이들은 늘 싱글벙글 이다. 교실 한쪽에 빵을 놓아두고 수업을 하려니 아이들 시선이 빵 있는 상자 쪽으로 가 있고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네 시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앞에 있는 아이부터 한 개씩 나누어 주다 보니 빵 한 개가 모자 라 제일 뒷자리에 앉은 아이 하나가 빵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 아이는 눈물을 쏟으며 엉엉 우는 것이다. 모자란 빵 한 개를 어디에서 구할 수도 없었다. 빵을 구하려면 십 여리가 넘는 읍내까지 나갔다 와야 되고 그렇다고 당장 읍내까지 나가 빵 한 개를 사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 한 개씩 먹는 빵을 나누어 먹을 만큼 마음이 성숙한 아이도 없었다.

이미 나누어 준 빵은 앞자리에 앉은 아이는 다 먹은 상태이고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을 안 빵을 받지 못한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고 있다. 다른 보상을 해 준대도 마무가내다. 그때 나누어 준 빵을 먹지 않고 책보 속에 싸 두었던 빵을 가지고 나오는 아이가 바로 할머니를 위하여 죽 그릇을 치마 속에 감추고 사라졌던 그 아이였다.

선생님, 저는 빵을 먹으면 배가 아파요. 저 이 빵 먹지 않겠어요.” 하고 빵을 교탁위에 올려놓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먹지 않고 할머니에게 드리려고 책보에 넣어 두었던 그 빵이었을 것이 뻔한 그 소중한 것을 내놓기까지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리고 빵을 받지 못한 아이의 자존심을 생각해서일까. 가지고 나온 빵을 그 아이한테 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배가 아파서 빵을 못 먹는 것이 아니 라 빵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그 아이의 표현이 나에게는 감동이라기보다는 슬픔이었다. 어른에게서 찾을 수 없는 속 깊은 뜻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도 슬픔으로 밀려온다.

 

 

밀턴이 말했던가.

너의 마음속에 사랑 · 평화 · 감사 · 용기 · 희망이 있을 때 너는 천국의 시민이 된다.’

 

 

이미 그 아이는 우리 주위를 천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봄에 피어나는 꽃이 호된 겨울을 맞고서야 화사하게 피어나듯이 지금 겪는 그 아이에게도 지금은 숱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성장하지만 사랑은 자기를 버리는 아픔에서부터 시작 된다는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언젠가 그 아이로 하여금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리라는 확신이 든다. 40여년이 흐른 세월이지만 지금도 가끔은 운동장에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또 소년 소녀 가장들을 볼 때, 제과점 앞을 지날 때면 내 밑바닥 영혼까지 흔들었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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