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마산면에서 107주년 3·1운동을 기념하는 ‘제19회 서천마산신장 3·1만세운동 재연 및 기념행사’가 27일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는 1919년 3월 29일 마산면 신장리 장터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서천 마산신장 만세운동은 지역 주민 수천 명이 참여한 서천의 대표적 항일운동으로 평가되며, 해마다 이어지는 재연행사는 지역 공동체가 독립운동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내는 상징적 역사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 [코리안투데이] 서천 마산신장에 다시 울린 대한독립만세 사진제공: 한경석 군의원 © 지승주 기자 |
충남 서천군 마산면에서 107년 전 신장 장터를 뒤흔들었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27일 열린 ‘제19회 서천마산신장 3·1만세운동 재연 및 기념행사’는 오전부터 주민과 학생, 지역 관계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진행됐고, 오후 들어 모든 순서를 마무리하며 올해 기념행사의 막을 내렸다.
이날 행사장은 태극기를 손에 든 참가자들과 흰 옷차림의 재연 참여자들로 가득 찼다. 풍물과 행진, 만세삼창이 이어지는 동안 현장 분위기는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 1919년의 그날을 공동체가 함께 몸으로 기억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특히 지역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재연에 참여하면서, 서천 마산신장 3·1만세운동은 과거의 기록 속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지역사가자 살아 숨 쉬는 기억으로 다시 자리했다.
서천 마산신장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마산면 신장리 장터에서 벌어진 서천의 대표적 항일운동이다.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송기면을 중심으로 송여직, 이근호, 임학규, 이동홍, 노형래, 하중호, 유일동 등 인사들이 장날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점에 착안해 거사일을 3월 29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준비한 뒤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당시 시위는 장터에서 시작돼 순사주재소 앞까지 이어졌고, 참가 규모는 2천 명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이는 서천 지역에서 독립 의지가 얼마나 뜨겁게 분출됐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이 만세운동은 단순히 장터에서 만세를 외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독립운동인명사전과 관련 사료에 따르면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선창한 인물들이 있었고, 일제 경찰의 해산 명령과 주도자 체포에도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들은 연행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더욱 거세게 결집했고, 순사주재소를 향해 항의와 저항을 이어갔다. 이 과정은 마산신장 만세운동이 자발적 참여와 집단적 저항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지역 민중운동이었음을 말해준다.
마산신장 만세운동의 의미는 지역성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3·1운동은 서울에서 시작됐지만, 전국 각지의 장터와 마을로 확산되며 비로소 민족적 독립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서천 마산면 신장리 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시위 역시 그런 전국적 흐름의 한 축이었다. 중앙의 지시만을 기다린 움직임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시대의 변화를 읽고 자기 삶의 공간에서 독립의 뜻을 행동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무게가 크다. 서천의 3·1운동은 바로 이 지역 민중의 자발성이 만들어낸 항일의 현장이었다.


